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현지시간) 1대1 단독 정상회담을 마치고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 정원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됐다. 아침까지만 해도 성공을 향해 순항하는 듯하던 정상회담은 오후 들어 결국 암초를 만났다. 북-미 두 정상은 아무런 합의 없이 예정됐던 합의문 서명식을 취소했다. 커다란 주목과 관심 속에 열린 정상회담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렬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협상 결렬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하노이에 왔다고 밝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먼저 회담장을 떠났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지만, 미국 쪽의 원칙 고수가 김 위원장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분위기와 관련해 ‘박차고 나간 것이 아니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악수하면서 끝냈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언제 다시 협상이 재개될지는 알 수 없다.
협상 결렬의 원인이 비핵화 실행조처와 상응조처의 조합을 찾아내지 못한 데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를 해주어야만 우리도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힌 데서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쪽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 또는 동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던 데 반해,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제재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두 사안을 놓고 마지막까지 절충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북-미 양쪽 다 물러서지 않은 것이 협상 결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협상이 재개된다면 북-미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깊이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기 위해 역지사지의 자세로 노력해야 함을 보여준다.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 진행 양상에 대한 미국 의회의 부정적인 기류도 협상 결렬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일부 기류 변화가 감지되기는 했지만, 워싱턴 정가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이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스몰딜’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했고, 과감한 타협을 본다 해도 북한에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비난이 날아들 판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실행만 하고 경제발전을 이룰 제재 완화를 해내지 못한다면, 내부의 압박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핵을 버리고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체제안보의 핵심인 핵을 당장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협상 결렬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발언을 보면,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앞으로 몇 주 내에 합의를 이뤄내길 기대한다”고 밝힌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것도 협상을 재개할 뜻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번 틀어진 협상을 되살리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여기서 북-미가 결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감정적 균열을 키운다면 사태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
북-미 합의를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우리 정부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충격이 클 것이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이 상황에 개입해야 한다. 협상 결렬의 여파가 길어져선 안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결렬로 협상의 판 자체가 깨진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취소된 회담을 되살려낸 바 있다. 그 경험을 살려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