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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39년만의 ‘광주 법정’서 여전히 발뺌한 전두환씨

등록 2019-03-11 18:06수정 2019-03-11 21:23

헬기사격·발포명령 ‘진실’ 고백해야
‘섣부른 용서’는 또다른 만행 부를 뿐
국민과 역사 앞 이제라도 참회하길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결국 광주의 법정에 섰다. ‘광주 학살’을 저지른 지 39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지 31년 만이다. 그동안 치매 또는 감기 등의 이유로 여러 차례 출석을 피하려 발버둥치다 법원의 강제구인 방침을 전해 듣고서야 마지못해 광주지법 201호 대법정에 선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기자들이 질문하자 "왜 이래"라며 뿌리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기자들이 질문하자 "왜 이래"라며 뿌리치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진 여론의 관심이 단순히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는 데 있지 않음은 전씨 스스로 잘 알 것이다. 39년 전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전씨 재판의 핵심 쟁점인 헬기 사격의 진상은 물론 발포명령자의 실체, 얼마 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성폭행·성고문의 진실까지 밝혀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이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인물이 전씨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씨는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는 등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군 헬기의 사격 사실은 2017년 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탄흔 150여개를 확인하는 등 국방부 조사와 검찰 수사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전씨가 같은해 4월 회고록에선 객관적 사실조차 무시한 채 조 신부를 비난했으니 명예훼손의 죗값을 치르는 게 마땅하다.

전씨가 고백해야 할 것은 헬기 사격뿐 아니라 1980년 5월 당시의 ‘발포 명령’ 자체다. 3공수여단은 5월20일 밤 상급 부대인 2군사령부의 발포 금지 및 실탄 통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발포를 강행해 시민 4명을 숨지게 했다. 505보안부대 수사관은 집단 발포 등 주요 결정을 보안사령부가 주도했다는 증언을 내놓기도 했다. 신군부가 보고서와 기록물까지 조직적으로 조작한 사실도 이미 드러났다. 앞으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이 시작되면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치매라던 전씨는 약간의 난청 말고는 비교적 온전한 정신상태를 보여줬다. 법정에선 예상대로 변호사를 통해 혐의사실 일체를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자신을 스스로 ‘씻김굿의 제물’ 운운하고 부인 이순자씨는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망발까지 일삼던 행태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1997년 12월 전씨가 사면된 직후, 광주항쟁 때 숨진 윤상원 열사의 아버지는 ‘당신들이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국민 대통합에 협력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일기에 썼다. 그러나 전씨는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반성은커녕 오히려 학살의 피해자들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전씨 사례와 최근의 5·18 망언 사태는 섣부른 용서와 사면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에게 생생한 교훈을 준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은 가해자의 솔직한 반성과 참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이제라도 그가 광주시민과 국민, 그리고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하고 참회하기를 기대한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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