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 관련 항의를 위해 의장석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에 빗대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나 원내대표는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야당이 정부 대북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을 북한 지도자의 수하 정도로 묘사한 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평화 정착’ 노력을 폄훼하고 훼방 놓는 시대착오적 발언일 뿐 아니라, 국회와 정당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4선의 중견 정치인답지 않은 시정잡배식 발언을 한 나 원내대표는 사과하고,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나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은 한마디로 수준 이하였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정책이나 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왜곡과 과장, 독설로 일관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이 거의 없었다. “70년 위대한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붕괴되고 자유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위헌” “강성노조 등의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 “국민 머릿속까지 통제하는 문브라더” 등 합리적 근거 없는 막가파식 비난 일색이다. 극우 태극기부대의 생경한 인식을 그대로 민의의 전당에 끌어들인 것이다.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 비난하면서 한편으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당 차원의 대북 특사 파견”을 얘기하니 그 진정성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나 원내대표 연설은 자유한국당의 현재 수준을 그대로 말해준다. 황교안-나경원 체제로 짜인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합리적 보수로의 변신 노력은 물거품이 됐을 뿐이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정당은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나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이번 발언 파동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른 정당의 대표연설에서 나 원내대표를 ‘일본 자민당의 수석대변인’이라 운운했다고 생각해보라”는 민주평화당 대변인의 논평을 새겨들어야 한다. 나 원내대표는 이제라도 정도의 정치, 비전과 품격의 정치로 복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