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개혁 입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가정보원 개혁은 아예 물건너갈 위기에 놓였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법과 함께 신속처리 절차(패스트트랙)에 올릴 개혁입법 목록에서조차 빠졌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포함시키면서 국정원 개혁법은 바른미래당이 난색을 표한다는 이유로 빼기로 했다고 한다. 댓글조작과 정치공작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들끓었던 비판 여론을 고려하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여야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기관 개혁에 대놓고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동안 의지와 역량 부족을 드러낸 정부여당 잘못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은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를 출범시키며 가장 빠르게 개혁작업을 추진해왔다. 자체 조사를 통해 댓글조작과 정치공작 등 각종 불법 사실을 적발해 검찰에 넘기는 한편, 제도 개혁을 위한 법안도 스스로 마련했다. 그 결과물이 국내 정치와 대공수사에서 손을 떼고 대북·해외정보 수집에만 전념하는 대외안보정보원으로의 전면 개편 방안이었다. 실제 정부기구와 민간기관을 담당해온 연락관을 없애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은 가시적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국회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 대공수사권을 유지하는 방안이 거론되더니 개정을 아예 ‘3년 유예’하자는 절충안까지 나왔다. 결국 패스트트랙에서도 빠졌으니 사실상 이번 20대 국회에서 법 개정은 무망해진 셈이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 대공수사 기능을 경찰의 대공수사 조직과 합쳐 안보수사처(가칭)로 만든다는 방안도 물건너간다. 가뜩이나 비대화 논란을 빚고 있는 경찰 조직 개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권력기관 개혁에 사실상 발목을 잡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매우 퇴행적이다. 특히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능 약화를 우려한다면서 개혁안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선거·정치개입으로 조직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잘 알면서도 개혁입법에 반대한다면 선거·정치공작에 계속 이용하겠다는 저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 개혁은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괴물 조직’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