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애초 지난 1월말까지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경영계의 무리한 요구 탓에 논의가 헛돌고 있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1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영계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영계는 파업 시 대체근로 인정, 부당노동행위 금지 제도 폐지,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유효기간 명문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파업 시 대체근로 인정과 부당노동행위 금지 제도 폐지는 헌법상 노동 3권을 제약하는 지나친 요구다. 국제노동기구는 파업 시 대체근로 인정은 국제 노동기준에 어긋나고 부당노동행위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경영계가 국제 노동기준에 역행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익위원들이 나머지 요구는 논의가 가능하다고 하는데도 경영계는 요지부동이다.
공익위원들은 “노사가 수용 가능한 과제부터 우선 논의해 3월말까지 합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유럽연합(EU)과의 무역분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2005년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 통상장관은 지난 4일 한국 정부에 핵심 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항의 서한을 보내왔다. 말름스트룀 장관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이 아직까지 비준하지 않은 핵심 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중대한 국제적 차원의 문제”라며 “한국이 우리가 제기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이행 절차의 다음 단계(전문가 패널 회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 패널 회부는 무역분쟁 단계로 들어서는 것을 뜻한다. 유럽연합과 무역을 하려면 국제 노동기준을 지키라고 한국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제시한 시한은 다음달 9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유럽연합 무역위원회 이전이다.
공익위원들은 “한국이 자유무역협정 노동권 조항을 위반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지 않도록 대타협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을 내어 “협약 비준의 시급성만 강조하고 경영계의 핵심 요구 사항은 뒤로 미루자는 뜻으로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경영계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규제 완화와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할 때도,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에 반대할 때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근거로 내세웠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만큼 국제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촉구하는 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엔 반대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도 입맛 따라 골라 먹겠다는 염치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 관련 기사 : 경사노위 공익위원 “경영계 탓, ILO 핵심협약 논의 제자리”
▶ 관련 기사 : 민주노총 “국제 망신당하기 전 핵심협약 비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