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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71년 만의 ‘제주 4·3’ 유감 표명, 늦었지만 당연하다

등록 2019-04-03 18:16수정 2019-04-03 19:05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 마련된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 마련된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국방부가 3일 ‘제주 4·3 사건’ 71돌을 맞아 처음으로 제주도민 희생에 유감과 애도를 표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제주 4·3 항쟁 추념식’에 참석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 1948년 발생한 제주 4·3 사건으로 제주도민의 10%인 3만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 유혈 참극을 주도한 군 당국은 사과나 유감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다. 이번에 군경이 나란히 공식 유감과 애도의 뜻을 밝힌 것은 우리 현대사 비극을 둘러싼 희생자의 해원과 명예회복을 위해 뜻깊은 일이다. 다만, ‘4·3 유족회’가 이번 유감 표명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적극적인 사과가 아니어서 아쉽다”고 언급한 대목에 유의해, 앞으로 희생자와 유족에게 한걸음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방안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남로당 계열 인사들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봉기하면서 촉발돼, 한국전쟁 휴전 때까지 지속됐다. 당시 군과 경찰·서북청년단은 강경 토벌작전으로 맞서, ‘무장단의 은신처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중산간 지역 마을을 초토화하고 ‘무장단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죄 없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최대 3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의 3분의 1은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국가 폭력’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 잘 보여준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4·3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월엔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제주 4·3 위원회’가 꾸려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 위령제에 직접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국회엔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개정안에 들어 있는 희생자에 대한 배상과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 등이 논란이 돼, 아직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4·3 배상은 지난 대선 당시 여야 후보들의 공약 사안이었다. 또 최근 잇따른 재심청구 소송에서 당시 희생자들이 무죄 선고를 받는 바람에 군사재판 무효화의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더는 4·3 희생자와 유족들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국회는 하루빨리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을 입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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