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새벽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참극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주민들이 범인의 이상행동을 경찰에 8차례나 신고하는 등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결국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생겨나고 말았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범죄로 인한 비극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철저하게 확인해서 더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범인 안아무개(42)씨가 마구 휘두른 흉기에 변을 당한 이는 75살 노인과 장애인, 10대와 50~60대 여성 등 모두 약자들이었고, 부상을 입은 사람도 15명이나 됐다. 안씨는 20대 초반 산업재해를 겪은 뒤부터 이상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2010년 폭력 혐의로 구속돼 조현병 진단을 받고 치료감호소에서 지냈고 2015년엔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 1년여 치료를 받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찰의 대응이다. 2015년 12월 이 아파트에 입주한 안씨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오물 투척 등 문제를 일으켜 주민들이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다. 특히 위층에 사는 강아무개(54)씨에게는 출근길에 날계란을 던지는가 하면 현관문에 오물을 뿌리고 초인종을 누르는 등 협박을 가했다. 조카 최아무개(18)양을 하굣길에 쫓아가 욕설을 퍼부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도 ‘증거’를 요구하는 것 이외에 제대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다못한 강씨가 지난달 3일 현관문 앞에 폐회로티브이(CCTV)까지 설치했고 며칠 뒤 오물을 던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그런데도 경찰은 한차례 안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 넘겼을 뿐 끔찍한 범죄를 사실상 방치한 꼴이 됐다. ‘횡설수설하는 등 대화가 어려워 훈방했다’지만 조현병으로 치료감호소에서 지낸 전과라도 확인했다면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예방 가능한 참사였다는 점에서 경찰 책임부터 철저히 따져물어야 한다.
서울 강북삼성병원 의사 피살 사건 뒤 일명 ‘임세원법’이 이달 초 국회를 통과했으나 이번에 다시 환자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경찰과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어디에서도 그의 병력을 확인하지 못했다. 결국 이번에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시스템 전반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