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후의 모습.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이 1돌을 맞았다.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남북 정상은 이날 채택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겨레와 전세계에 천명했다.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도 확인했다. 10여년의 단절을 끝내고 남북이 만들어낸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냉전 해체를 향한 여정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지난 1년은 남북이 이루어낸 것보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보여주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한반도는 대결의 장에서 대화의 장으로 대전환을 시작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정상회담을 포함해 한해 세차례나 만나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었다. 판문점 선언에서 다짐한 ‘남북간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는 9·19 남북군사합의라는 큰 결실로 이어졌다. 이 합의에 따라 휴전선 일대의 육·해·공에서 남북간 적대행위가 모두 사라졌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설치돼 남북이 상시 소통하는 시대도 열렸다.
더 중요한 것은 북-미 대화가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판문점 선언 한달여 뒤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사상 처음으로 만나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 잔재 해체를 시작했다.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미 정상은 다시 한번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공식 확인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남북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조성된 새로운 교착 국면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 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도가 어그러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난해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나아가던 남북 대화와 교류는 올해 들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1돌을 하루 앞두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의 대북 제재 틀에 갇혀 있는 한 남북관계가 답답한 형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점을 정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해법’을 고집하는 북한 사이에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북-미 협상이 순항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북-미 사이 대치가 길어지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력도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북-미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문 대통령은 북한에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대신에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일괄타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뜻을 더 분명히 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한반도 시계가 판문점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관건은 하노이 결렬 이후 사라진 북-미 대화 테이블을 다시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은 북한이 문 대통령이 제안한 정상회담 제안을 받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려야 북-미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계기가 마련된다. 조성된 난국을 헤쳐나갈 길을 시급히 찾지 못한다면, 판문점 선언의 뜻깊은 의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