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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영화 ‘기생충’의 근로계약 준수가 눈길 끄는 현실

등록 2019-05-27 18:44수정 2019-05-27 19:42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제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을 지키며 제작된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봉 감독은 지난달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예술적 판단으로 근로시간과 일의 강도가 세지는 것이 항상 부담이었다”며 “이번에 표준근로계약에 맞춰서 촬영하는 게 편했다”고 밝혔다. 표준근로계약은 스태프의 4대 보험 가입, 초과근무수당 지급, 계약기간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 인터뷰가 주목받는 건, 좋은 작품을 위해 제작진의 헌신과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우리 사회의 묵은 오해를 흔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이 영화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탓에, 영화 제작진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일해왔다. <기생충>이 첫 표준근로계약이 아닌데도 이렇게 관심을 끄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영화 제작진의 노동 문제에 무관심했다는 방증이다.

표준근로계약은 2014년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점차 확산되는 추세이긴 하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자료를 보면, 조사 대상 작품 가운데 표준근로계약을 맺은 작품 비율은 2015년 36.3%에서 2018년 77.8%로 늘었다. 하지만 순제작비 10억원 이하의 영화나 아이피티브이(IPTV)용 성인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은 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제작 여건이 열악한 영화일수록 오히려 표준근로계약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구조다.

방송계 사정도 결코 덜하지 않다. 2016년 이한빛 씨제이이앤엠 피디가 열악한 방송 노동환경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로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나, 제작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도 티브이엔(tvN)이 제작하는 <아스달 연대기>나 에스비에스(SBS)의 <황후의 품격> 제작진이 주 100시간을 넘는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사실이 드러났다.

영진위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영화를 영화발전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표준근로계약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방송 재허가 심사에 이 방식의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한류 콘텐츠가 전세계로 뻗어가는 뒤안길에서 영화와 방송 제작진이 눈물을 흘리는 일이 더는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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