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설] ‘피의사실 공개’ 금지, 알권리 고려 신중 추진해야

등록 2019-09-16 18:25수정 2019-09-16 18:50

정부여당이 형사사건 피의사실 공개 금지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박상기 장관 시절 법무부가 만들어놓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 초안은 기존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비해 공개 금지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의사실 공개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특히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공보준칙을 만들었으나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돼왔다. 피의자 인권을 보호해야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도 중요하다는 명분 또한 강력했기 때문이다.

기존 준칙이 사문화된 마당에 피의사실이 마구 공개돼 인권을 침해하는 걸 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른바 ‘조국 장관 의혹’ 수사가 한창인 시점에,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법무부가 훈령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초안 내용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에는 미흡해 보인다.

법무부 초안을 보면, 공소제기 이전까지 피의사실 공개 금지를 원칙으로 하는 것은 기존 공보준칙과 같다. 형법 126조 피의사실 공표죄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다만 준칙은 6가지 예외 사유를 두었으나 초안은 훨씬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금지 행위를 못박았다. ‘중대한 오보 방지’ 목적 등 예외 사유에 해당돼 피의사실을 공개하더라도 공보자료에 의한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구두설명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지정된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하도록 했다. 공소제기 후에도 피고인 이름과 죄명, 기소일시 등 이외에 공소사실이나 범행경과 등은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검사 및 수사관은 아예 언론 접촉을 금지했다. 알권리 보장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내용이다. 검찰·언론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초안 단계라고는 하나 너무 심했다.

우리 검찰사에서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사들의 의도적인 피의사실 공개는 ‘외압’을 돌파하는 유용한 수단으로서 나름 정당성을 가졌다. 그러나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 이후 피의사실 흘리기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왔고 검찰 스스로 공보준칙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최근 ‘조국 장관 의혹’ 사건에서도 피의사실 공개 논란이 적지 않다. 여당이 금지규정 추진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그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회 청문회 등 정치일정에 뛰어든 검찰의 자업자득 측면도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이번 방안은 시기와 절차 등 여러 면에서 부적절해 보인다. 추진하되, 광범위한 여론 수렴 등 좀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