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6 18:30
수정 : 2019.12.2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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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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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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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진보 성향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이들 단체에 대한 계열사 임직원들의 후원 내용을 파악해 그룹 차원에서 관리했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환경운동연합 같은 신망 높은 시민단체에 ‘불온’ 딱지를 붙이고, 노조 결성 방해를 넘어 일반 직원들까지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삼성은 2013년 미래전략실 주도로 삼성물산, 삼성생명을 비롯한 20여개 계열사 임직원 386명의 명단을 정리한 ‘불온단체 기부금 공제 내역 결과’ 등의 문건을 작성했다. 임직원들의 연말정산 자료를 동의 없이 열람하고 기부액, 직급, 최종 학력 따위의 개인정보를 문건으로 만들어 특별관리 대상에 올렸다고 한다.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 것부터 심각한 법 위반으로 ‘삼성판 블랙리스트’라 할 만하다.
삼성이 불온단체로 ‘낙인’찍은 11곳에는 환경운동연합 외에도 한국여성민우회, 민족문제연구소, 향린교회 등이 들어 있다. 멀쩡한 시민단체에 불온 색칠을 한 것도 놀랍거니와 ‘6월 민주항쟁’의 성지로 꼽히는 향린교회까지 불가촉 대상으로 여기는 시대착오적 인식에 할 말을 잃는다. 또 ‘불온단체’ 선정 때 국가정보원의 지원을 받는 보수단체인 ‘사이버정화시민연대’가 2010년 10월 발표한 ‘반국가 친북 좌파 69곳’의 목록을 참고했다는 대목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해당 문건의 내용은 지난 4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 재판 때 검찰에서 공개했지만, 노조 설립 방해라는 핵심 사안에 가려져 묻혔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파괴 재판에 제출된 ‘2013년 5월28일 기부금 확인 결과’라는 비슷한 내용의 문건도 마찬가지다. <한겨레>가 입수한 문건에는 “(기부자) 명단을 각사에 통보해 노사 부서의 주관하에 특이 행동을 파악하는 등 밀착 관리 주력”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삼성이 진보 성향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직원 감시를 노사 업무의 일환으로 여긴 것이다. 노조 와해 공작과도 연관돼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된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를 적대시하고 과거 공안기관처럼 임직원을 불법 감시·사찰한 삼성의 행동이 단지 6년 전의 과거지사로 끝난 것일까. 삼성이 노조 와해 공작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 뒤 모호한 사과 뜻을 담은 ‘입장문’만 내고 행동으로 뒷받침하지 않는 듯한 행태를 반복한다면 의심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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