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29일 직원들에게 보낸 노조 가입 권유 이메일을 회사 쪽이 일괄 삭제했다. 노조는 이메일에서 삼성전자와 경쟁사인 ‘H’(에스케이하이닉스로 추정)의 복지 혜택을 비교한 표를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노조가 있다. 힘이 생기도록 가입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6일에도 회사 쪽이 메일을 일방적으로 삭제해 노조가 공식 항의했는데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사규에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통신망을 업무 외적인 용도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있어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지나친 형식논리가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해 11월16일 설립된 한국노총 산하 노조로, 창립 이후 50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이어온 삼성전자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노조라 할 수 있다. 갓 출범한 노조가 직원들에게 보낸 노조 가입 권유 메일을 ‘업무 외적 용도’라는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삭제해버리면 노조가 무슨 수로 조합원을 모집하고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노조 출범을 계기로 삼성에도 ‘합리적 노사관계’가 싹트기를 바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으나, 회사의 인식과 태도는 거의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노조를 협력과 상생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적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17일 ‘노조 와해 공작 사건’으로 이상훈 이사회 의장(사장)과 강경훈 부사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다음날 입장문을 내어 사과했다. “과거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앞으로는 미래 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다. 입장문의 잉크도 아직 마르지 않았을 터이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뿐인 사과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기로 한 것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를 위한 ‘면피용 이벤트’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저지른 뒤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고 사과하고 또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일을 되풀이하니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이나 준법경영 약속 모두 잘못된 과거와 결연히 단절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일 때 비로소 믿음을 얻을 수 있다.
▶ 관련 기사 : 삼성전자, 노동조합 가입 안내 이메일 일괄 삭제▶ 관련 기사 : ‘노조 와해’ 삼성 “대단히 죄송”…1매 분량 사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