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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비판 기사 쓴 기자 월급 가압류한 KT&G, 지나치다

등록 2020-05-19 18:35수정 2020-05-20 02:08

대기업이 자사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쓴 기자의 급여에 가압류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기사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피해 당사자는 이를 정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기사의 잘잘못을 판가름하기도 전에 기자 개인의 급여부터 가압류한 것은 지나친 조처다. 공적인 사안에 대한 보도를 위축시키는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이란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이티앤지(KT&G)는 ‘KT&G ‘신약 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 의혹’이라는 <경향신문> 기사에 대해 신문사와 편집국장, 해당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기자 급여 가압류도 신청했다. 법원은 본안 소송에 대해서는 재판에 앞서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조정회부 결정을 하면서도, 매달 기자 급여의 절반을 2억원에 이를 때까지 가압류하도록 결정했다.

과연 가압류가 필요한 상황인지부터 의문이다. 가압류의 본래 취지는 본안 소송에 이기고도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는 데 있다. 설령 가압류의 필요성이 있다 해도 유독 기자만 상대로 급여를 가압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은 ‘새로운 유형의 언론 재갈 물리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생계 수단인 급여를 묶어둠으로써 기자가 직접적인 압박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자 개인에 대한 보복성 조처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쟁의행위에 나선 노동자들을 손해배상 소송과 월급 압류로 괴롭히는 일부 기업의 비뚤어진 행태를 연상시킨다. 이런 가압류 신청을 선뜻 받아들인 법원의 태도도 유감스럽다.

재계 30위 안에 드는 케이티앤지는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공적 영역의 일원이다. 주요 경영 사안이 언론의 감시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불공정 보도에 대한 방어권 행사’라는 케이티앤지의 항변을 이해하려 해도,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라는 또 다른 가치를 존중하는 기업에 걸맞은 태도라고 볼 수 없다. 기자 급여 가압류는 언론 보도를 둘러싼 다툼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우리 사회의 제도와 관행을 훼손하는 일이다. 공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위축시키려 무리수를 둔 기업으로 기억되지 않으려면 케이티앤지는 가압류 조처를 당장 철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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