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오후 개성공단 안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뒤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연기로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 개성공단 내에 문을 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16일 오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지난 1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져내리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지 사흘 만에 실행에 옮겼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약속을 토대로 문을 연 ‘남북 상시 소통의 상징’이 21개월 만에 무너져내린 것이다. 참으로 충격적이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 국민 세금 114억여원이 들어간 연락사무소를 북한이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폭파한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이날 무너진 것은 연락사무소 건물만이 아니다. 북한 당국의 신뢰도 크게 훼손돼, 애써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했던 국내 여론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번 폭파를 통해 ‘대남사업의 대적사업 전환’ 선언이 빈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남북 합의를 무너뜨린 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과의 합의는 믿을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킬 것이다.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한의 대외 신뢰도에도 큰 해악을 끼치게 될 전략적 오판이다.
폭파에 앞서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전, 남북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을 다시 요새화하고 대남전단 살포에 나설 가능성을 예고했다. 우선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시범 철거한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를 복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북한이 개성공단을 영구 폐쇄하고 공단 건설 당시 북쪽으로 이동시켰던 군 부대를 다시 배치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금강산 관광 시설을 철거하고 군 부대를 재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이곳을 다시 ‘요새화’한다면 남북관계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갈 위기에 빠진다.
북한은 남쪽을 압박해 판세를 바꾸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북-미 대화가 진전되지 않고, 한국이 미국 눈치만 보면서 남북협력을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불만이 강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한반도 냉전 구도를 조금씩 녹이면서 남북이 평화와 번영을 향해 전진해왔던 성과를 허무는 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예고대로 9·19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하면 통제 불능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더 이상의 조처를 당장 멈춰야 한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북한의 이번 행위가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유감을 표하고,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북한에 특사 파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북 당국은 역사에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대화를 통한 돌파구 마련에 최선을 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