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왼쪽)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미국 국무부 제공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일 담화를 발표해 “조미(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최 부상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 있는 미국과 과연 대화나 거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 담화를 두고 일부에서는 ‘북한이 미국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다’고 분석하나,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최 부상 담화를 뜯어보면, 미국이 판을 새롭게 짜거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대화의 조건’이 담겨 있다. 빈말이 아니라 의미 있는 ‘행동’을 하면 미국과 마주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 부상 담화는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3차 북-미 정상회담 중재 노력 발언과 외교안보팀 교체, 북한과 비핵화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이번주 방한(7~9일)에 맞춰 나왔다. 지난해 11월 비건 부장관은 비핵화 협상의 카운터파트로 최 부상을 지목한 바 있다. 방한 기간 중 비건 부장관이 내놓을 대북 메시지가 북-미 대화 재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한반도 정세 악화 방지를 위한 상황 관리를 치밀하게 하고 교착 상태인 남북, 북-미 대화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먼저 미국의 협상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오는 8월 한-미 연합훈련 조정을 검토할 만하다. 북한이 이 훈련을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며 문제 삼아왔고, 올해는 코로나19로 한국과 미국 모두 훈련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양국 정부가 이 훈련을 조정해 북한에 믿음을 보여주고 창의적인 협상안을 마련해 막힌 대화의 물꼬를 트길 기대한다.
우리 정부가 능동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북-미 관계도 추동해 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발탁한 배경에는 ‘남북이 적극적으로 속도를 내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테니 미국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방한 기간 비건 부장관이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등 새 외교안보팀과도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정부는 비건 부장관에게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미국 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