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신임 이사장이 31일 전북 전주의 국민연금공단 본사로 출근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제공
8개월째 공석이던 국민연금공단의 새 이사장에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 31일 취임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공단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임명됐다. 김 이사장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인물이다. 정부가 이사장 자리를 8개월째 공석으로 방치하다 결국 여당의 ‘총선 낙선자’를 낙점한 모양새다.
김용진 이사장의 전임자인 김성주 전 이사장도 비슷한 이력의 소유자다. 김 전 이사장은 지난 20대 총선 때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이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지난 1월 21대 총선에 다시 출마하기 위해 이사장직을 그만뒀다. 그 자리를 무려 8개월 동안 공석으로 놔두더니 또다시 총선 낙선자를 후임자로 임명한 꼴이 됐다.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는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는 건, 실망스러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700조원을 웃도는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노후소득 보장 강화, 기금운용 지배구조의 혁신,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안착 등 산더미 같은 개혁 과제들이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는 갈수록 앞당겨지는데, 연금 개혁은 아예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2017년 ‘삼성 로비’로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전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흑역사까지 있다. 어느 공공기관보다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춘 이가 꼭 필요한 시점인 이유다.
공공기관장에 여권 인사를 임명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능력과 경험 여부다. 복지부는 “사회복지 재정정책 및 공공기관 혁신 분야에서 다년간 쌓아온 전문성”을 강조했다. 낯간지러운 자평이다. 김용진 이사장은 기재부 초급 간부들이 두루 거치는 복지·사회 분야 예산을 맡았던 게 사실상 전문성 이력의 전부다. 기재부 출신 관료가 국민연금 이사장에 임명된 건 2005년 이후 15년 만이다. 복지부는 공공기관 혁신 정책을 추진한 경력을 내세우지만, 평생을 관료로 지낸 터에 개혁성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임기 후반기에 공공기관장 자리를 낙하산 인사로 채웠던 과거 정부의 행태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되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번 인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