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 만에 국방비가 12조원 넘게 늘었다. 자료 국방부
정부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555조8천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3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중 국방예산은 52조9174억원이다. 국방부는 국방예산 증가율 5.5%가 전체 예산안 증가율 8.5%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올해 증가율 7.4%보다도 1.9%포인트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평균 국방예산 증가율 4.2%보다 높다.
물론 우리의 분단 현실을 고려하면 튼튼한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정부가 90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년 예산을 대폭 늘린 것은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서다. ‘민생이 안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국방예산 중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 코로나 대응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기존 ‘군사 안보’ 위주의 관점을 넘어 ‘인간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튼튼한 국방’을 강조하며 국방비를 크게 늘려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40조3347억원이던 국방예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연평균 7%의 증가율을 보여, 4년 만에 12조원 넘게 급증했다. 내년 국방비 증가율이 예년에 견줘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방비 누계’에 주목해야 한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총 국방비가 727조원인데, 지난 3년 동안 140조원가량 사용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첨단무기를 증강하는 방위력 개선비 평균 증가율이 11%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평균 증가율인 5.3%에 견줘 2배가 넘는다. 국방부가 지난달 9일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을 보면, 앞으로 5년간 국방예산이 약 301조원이다. 이 추세라면 2026년 국방비는 70조원을 넘게 된다. 중국과 일본의 위협까지 상정한 ‘전방위 안보 위협’ 대비를 내세워 추진하는 경함모, 핵잠수함 도입 사업이 동북아 평화를 흔들 것이란 우려도 만만찮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유럽에서는 국방비와 복지 가운데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 이 둘 사이의 적정 분기점이 어디인지를 따지는 ‘대포 버터’(guns or butter) 논쟁이 치열했다. 안보를 최우선시해온 국내에선 국방비가 성역 취급을 받아왔다.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 때다. 예산 심의를 앞두고 있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방예산 규모가 적정한지, 꼭 필요한 곳에 배정됐는지, 더 아낄 방법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심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