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일본 자민당 총회에서 새 총재로 선출돼 총리직을 예약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손을 번쩍 들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일본 집권 자민당이 14일 중·참의원 총회를 열어 스가 관방장관을 압도적인 표차로 차기 총재로 선출했다. 16일 임시국회에서 총리 선출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2012년 12월26일 아베 총리 취임 이후 7년8개월여 만에 일본 총리가 바뀌는 것이다.
아베 정부의 2인자였던 스가는 ‘아베 정권 계승’을 표방하고 있어,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과 수출규제 탓에 악화된 한일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가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며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변하는 아베의 주장에 동조한다. 스가 자신이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현재 일본 사회 전반에서 한국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기는 분위기도 있다.
반면, 스가는 비서관에서 시작해 총리까지 오른 일본에선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비세습’ 정치인이다. ‘혐한’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아베에 비해 이념을 덜 내세우고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런 스가의 실용적 리더십이 한일관계에서도 발휘되길 기대한다. 게다가 이미 한차례 연기된 도쿄올림픽을 내년에 개최하려면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형편이다. 일본 내에서도 실익은 없고 되레 일본 기업들에 피해를 입힌 수출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가가 총리에 취임한 뒤 조기 총선을 실시해 안정적 지도력을 확보한다면, 아베와 구별되는 자기 색깔의 정치를 추진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공간이 넓어질 것이다. 일본이 한일관계를 이대로 계속 방치할 의도가 아니라면, 새로 등장하는 스가 내각이 현실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로 한국에 손을 내밀기를 바란다
우리 정부도 일본 총리 교체를 한일관계 회복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책임 의식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원칙은 지키면서도, 외교 채널을 통한 지속적인 협의로 이견을 좁혀나간다면 현실적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신냉전의 거대한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 한일 양국의 관계 회복과 협력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