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자민당 총재가 16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제99대 총리로 선출된 뒤, 의원들의 축하 박수를 받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새 정부가 16일 공식 출범했다. 스가 자민당 총재는 이날 일본 중의원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일본의 제99대 총리로 선출됐다. 7년8개월 만의 총리 교체이지만 ‘아베 정권 계승’을 강조하는 스가 총리에게서 당분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솔직한 평가다.
스가 신임 총리가 이날 발표한 새 내각의 각료 명단을 보면, ‘아베 내각’이 고스란히 옮겨온 모습이다. 아베 정권을 지탱해온 주요 인물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 등 핵심 인물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방위상에는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이자 극우 정치인인 기시 노부오 의원이 내정됐다. 전체 20명 각료 가운데 아베 내각 현직 각료가 11명, 전직 각료가 4명이다. 일본의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인선이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부 계승이 인사에서도 전면에 보인다”며 “당내 기반이 약한 스가 총리의 앞날이 불안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스가 총리가 강조한 ‘아베 정권 계승’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뤄 짐작할 수는 있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내세워 일본 경제의 회생을 추진해 여론의 지지를 결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정치와 안보 현안에서 일본을 우경화의 길로 이끌었다. 미-일 동맹 강화를 바탕으로 자위대가 전세계에서 미국과 함께 싸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다 실패했다. 스가 총리 역시 아베의 뜻을 이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새 연립정권 수립에 관한 합의문에도 “개헌을 향해 국민적 논의를 심화해 합의 형성에 노력하겠다”고 명시했다. 아베 정부 7년 반 동안 이어져온 혐한과 혐북, 혐중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가 스가 정부에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신호다.
스가 총리는 당분간 코로나19 대응, 경제 회복, 올림픽 개최 등 국내 과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아베 정부의 주요 정책 설계자였으나, 외교 문제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권력 기반이 안정되면 독자적 외교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미-중 신냉전 위기 속에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이 크다. 양국 정부가 한국이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일본이 바라는 북-일 수교 등에서 접점을 찾아 한-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