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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오죽하면 언론에도 ‘징벌적 손배’ 법안 나왔겠는가

등록 2020-09-25 18:30수정 2020-09-26 02:33

가짜뉴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가짜뉴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법무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본격 도입을 위해 28일 입법예고할 예정인 상법 개정안은 언론사에도 적용된다. 법무부는 입법 추진 배경을 설명하면서 “최근 범람하는 가짜뉴스, 허위정보 등을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위법행위에 대한 현실적인 책임 추궁 절차나 억제책이 미비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와 언론의 신뢰 하락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적절한 대응책 마련은 필요하다. 형사처벌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도한 제재를 지양하면서 그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권력 감시와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공론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명백한 가짜뉴스와 사실 왜곡은 공론장 자체를 오염시키는 행위로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막이 뒤로 숨을 수 없다. 반면, 아무리 해로운 가짜뉴스라고 해도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는 언론 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형사처벌이 그런 것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언론·표현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하도록 권고하는 이유다. 대신 민사적 수단을 통해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응을 하는 것은 정당성을 지닌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더라도 적용은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입법예고된 상법 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단순 실수로 인한 오보 등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배상액을 산정할 때 손해의 정도, 재산 상태, 구제 노력 등을 고려하도록 했다.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은데도 보복 차원에서 소송을 거는 등 남용 가능성을 막고, 충분한 정정 보도 등 비금전적 해결책을 우선하는 게 바람직하다. 배상액을 손해의 5배로 제한했는데 총액의 상한을 두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실제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하는 것은 최악의 사례에 한정돼야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권리다. 하지만 모든 권리가 그렇듯 무제한의 절대적 지위를 누릴 수는 없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수긍할 수 있지만, 언론의 신뢰와 영향력을 높여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가짜뉴스 억제책은 긴요하다. 형사처벌 방식을 지양하고 입법 과정에서 정교한 오남용 방지책을 마련함으로써 정당한 비판 보도가 위축될 위험을 제거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가짜뉴스 대응의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계의 성찰과 자정 노력이다. 오죽하면 언론사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자는 법안이 나오겠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지난 6월 신뢰도 평가에서, 한국 언론은 조사 대상 40개 국가 중 최하위였다. 허위·왜곡보도를 일삼으면서도 그로 인한 피해 구제는 나몰라라 하기 때문이다. 신뢰 회복을 위한 뼈저린 각성과 비상한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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