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구광모 엘지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이 지난 1월 2일 청와대 주최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 하례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 등 4대 그룹 회장들이 지난 5일 비공개로 만났다.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말에 이어 한 달여 만에 두 번씩이나 모인 게 이례적이어서, 회동 배경과 논의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4대 그룹은 회동 사실은 인정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함구로 일관한다. 다만 재계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를 모아보면, 최연장자인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의 주선으로 최근 부친상을 당한 이재용 부회장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고 한다. 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고 미국 대선 영향 등 다른 현안도 함께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한상의 회장 추대 문제도 거론됐을 수 있다. 최 회장은 내년 초 물러나는 박용만 상의 회장의 유력한 후임자로 거론된다. 최 회장으로서는 다른 그룹 회장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을 수도 있다. 4대 그룹에 상의 회장 선임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4대 그룹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자연스럽게 재계 공동 추대의 모양새가 갖춰질 수 있다.
가까운 회장들끼리 서로 경조사를 챙기고, 관심사를 논의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관심이 모이는 것은 우리 경제가 당면한 엄중한 상황과 4대 그룹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 때문이다. 재계는 외환위기 등 우리 경제가 큰 위기에 부닥쳤을 때 상위 그룹이 구심점이 되어 단합된 힘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올해 코로나 위기가 발생하자 정부는 총력전을 펴며 재계에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계는 겉으로는 호응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개별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고 이해관계도 제각각이지만 국익이라는 큰 틀에선 대승적으로 대응하는 게 마땅하다. 당장 코로나로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대기업부터 투자·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상법 등 ‘공정경제 3법’도 당장은 부담이 있더라도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4대 그룹은 이미 젊은 회장들로 세대교체를 마쳤다. 4대 그룹 회장들이 코로나 위기 극복과 미래 대처에서 재계의 리더십을 십분 발휘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 차기 상의 회장 추대도 그 연장선에서 추진된다면 더욱 의미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