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배달을 하고 있는 한 배달 노동자의 모습.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배달노동자들의 아파트 단지 내 오토바이 출입이나 일반 엘리베이터 탑승을 막는 ‘갑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겨레>가 1일 보도한 배달노동자 400여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주문음식 배달노동자에게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아파트 단지가 서울에만 최소 81곳이나 된다고 한다. 조사 대상과 조사 기간의 한계를 고려하면 이런 실태는 훨씬 광범위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편익만 취하고 그들이 눈에 띄는 것조차 막겠다는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필수노동자’라면서 정작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걸어서 배달하라는 건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일하는 배달노동자에게 이어지는 배달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배달 콜을 놓치기라도 하면 아예 콜 자체가 일정 시간 중단되는 불이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배달노동자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다. 이런 요구를 하는 아파트의 상당수는 강남·서초구 등에 있는 고가의 최신식 아파트라고 한다. 또한 일부 아파트를 비롯해 대형 빌딩과 쇼핑몰에서는 일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음식 냄새가 난다며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하거나 헬멧을 벗고 신분증을 맡기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아파트들은 주민들의 안전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고 한다. 주민 안전이 걱정된다면 아파트 입구에서 음식을 찾아가도록 하는 게 상식적인 행동일 것이다. 정작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두고 냄새가 난다며 엘리베이터 이용을 막는 처사는 어처구니없다는 것 말고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민주노총 배달서비스지부는 아파트 갑질과 빌딩·쇼핑몰의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기로 했다. 인권위의 엄정한 조사와 조처가 이뤄지길 바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배달노동자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노동자가 됐다. 그들이 명실상부한 필수노동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려면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배달노동자들이 일부 소비자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려면 배달업체가 나서서 이를 보장하는 내부 규정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본다. 힘없는 노동자들을 갑질로부터 보호하기는커녕 불이익을 주는 일부터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