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백 전 장관이 9일 새벽 영장이 기각된 뒤 대전 유성구 대전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청구된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9일 기각됐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지난해 말 산업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한 뒤 정책 결정 과정으로까지 수사 범위를 넓혀왔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자체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에도 무리한 수사를 벌이다 법원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면서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로는 피의자의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고 범죄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가능성뿐 아니라, 혐의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에너지 전환 정책과 관련된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모든 부서와 백 전 장관 집·사무실 등을 대규모로 압수수색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온 데 비춰보면 부실한 수사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원은 직권남용죄의 경우 엄격한 법 해석과 적용이 필요하다는 원칙도 언급했다.
애초 감사원은 문서 삭제 행위에 대해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에 넘겼을 뿐인데 국민의힘이 “경제성 평가 조작과 조기 폐쇄 결정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백 전 장관 등 12명을 고발한 것을 계기로 수사가 확대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전지검을 방문한 지 1주일 만에 수사가 본격화하는 등 윤 총장의 뜻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여러모로 ‘정치적 수사’라는 의구심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최근엔 자료를 삭제한 공무원들의 공소장에 언급된 ‘북한 원전 건설’ 문건을 두고 소모적인 정쟁이 빚어지기도 했다.
월성 1호기 폐쇄는 경제성뿐 아니라 원전의 안전성과 국민 안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책 결정이었다. 에너지 정책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고 선출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따른 조처이기도 하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설계 수명을 마쳤으나 3년 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수명 10년 연장 승인으로 재가동됐는데, 2017년 주민들이 낸 소송에서 법원도 “수명 연장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렇게 정치적·법적으로 정당한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을 두고 범죄 혐의를 찾겠다며 대대적 수사를 벌이는 것은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