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이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8일 전체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며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 서약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의 재산은 카카오와 계열사 주식을 포함해 현재 시가로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재벌가 ‘부의 대물림’이 당연시되어온 현실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그의 공개적인 약속과 다짐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서 부자들의 도덕적·사회적 책임이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동안 재벌 총수나 기업가의 사재 출연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불법·비리 사건으로 사회적 비판을 면하거나 감형을 받을 목적으로 약속한 경우가 많았다. 그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공익재단에 출연해 사실상 경영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점에서 한창 성장하는 기업의 최대주주가 거액의 사재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 의장은 아직 구체적인 실행 시점과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고민을 시작한 단계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나갈 생각”이라며, 기부 사업을 직접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최근 두 자녀가 지주회사에 근무 중인 사실이 알려져 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일각에선 공익재단을 만들어 지배력을 유지해온 과거 재벌 총수 관행을 뒤따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김 의장이 이른 시일 안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해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고 진정성을 인정받기 바란다. 카카오그룹은 ‘코로나 특수’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그가 구상하는 사회문제 해결이, 코로나발 양극화 완화를 위한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졌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미국의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은 생전에 거액 재산을 출연해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전통과 문화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국내 재벌 총수와 기업가들은 불법·편법으로 부와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관행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의장의 기부 약속이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