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원내대표단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신임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돌연 무릎을 꿇고 방명록에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민주당은 윤 위원장이 4·7 재보궐선거를 초래한 박원순·오거돈 전 서울·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 위원장의 ‘방명록 사과’는 시점과 장소, 방식 모두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부적절한 사과로 피해자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 위원장은 재보선 참패 뒤 민주당의 쇄신을 이끌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 그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첫 공식 행보를 시작한 것은 무척 실망스럽다.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사과에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또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윤 위원장은 재보선 패배 보름이 지난 시점에서 누구에게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사과를 했다. 순국선열을 참배하러 간 곳에서 뜬금없이 성폭력 피해자를 언급한 것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 행동이다. 자신의 엉뚱한 행동에 대해 비판이 나오는데도 처음엔 당직자가 대신 나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과라고 밝힌 것도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오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가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저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니다. 왜 현충원에서 제게 사과를 하나. 너무나 모욕적이다”라고 비판한 건 당연하다. 그는 자신이 “지난달 민주당의 2차 가해 인사들의 사과와 당 차원의 조치를 요청한 것에 대해선 감감무소식인데, 말뿐인 사과는 필요 없고 하신 말씀에 책임을 져달라”고 요구했다. 윤 위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 당이 그분들에게 충분히 사과를 드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신원이 밝혀질 수 있어 찾아 뵙는 것도 적절치 않다. (현충원이) 사과를 하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 피해자의 절실한 호소에 부응하는 응답을 내놔야 한다. 윤 위원장이 자신의 부적절한 언행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라도 2차 가해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의 실질적 조처를 담아 다시 사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