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가 지난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렸다. 고인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헌화한 뒤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3살 청년 이선호씨가 컨테이너 작업 도중 사고로 숨진 경기 평택항에서 안전 점검도 하지 않은 채 개방형 컨테이너를 계속 사용 중인 사실이 31일 <한겨레> 취재로 드러났다. 컨테이너의 노후화는 이번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이씨가 숨진 뒤에도 한달 넘게 노동자들이 똑같은 위험에 노출된 채 일을 해온 것이다. 최근 산재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가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할 따름이다.
이씨는 평택항 부두에서 300㎏ 무게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컨테이너 안쪽에서 일하던 중 맞은편 날개가 접히면서 발생한 진동에 의해 이씨가 있던 쪽 날개가 이씨를 순식간에 덮친 것이다. 사고가 난 컨테이너에는 날개가 접히는 속도를 줄여주는 스프링 안전장치도 없었다. 평택항에는 100개가량의 개방형 컨테이너가 있는데, 노후화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 컨테이너를 점검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사용하고 있어 노동자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 기업 소유의 컨테이너라서 점검이 어렵다고 하는데, 궁색한 설명이다. 사각지대가 드러나면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앞서 30일에는 화물차 기사가 파지 더미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쌍용씨앤비(C&B) 공장에서 사고 28분 만에 작업을 재개한 사실이 드러났다. 큰 사고가 났는데 사고 원인도 조사하지 않고 곧바로 같은 작업을 시킨 것이다.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한 현장 보존도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 현장에 만연한 인명 경시와 안전 불감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참사는 숨진 회물차 기사 장아무개(52)씨가 컨테이너 문을 여는 과정에서 파지 더미가 쏟아지는 바람에 발생했다. 그러나 화물운송사업법에 따른 화물차 기사의 업무는 ‘화물차를 이용하여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일’이다. 운송을 마친 뒤 컨테이너를 여닫는 일은 화물차 기사의 고유한 업무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물을 받는 업체 쪽에서 화물차 기사에게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안에 있는 화물을 꺼내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화물차 기사가 상·하차 작업을 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잇따르자,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의 요구로 지난 3월 화물차 기사에게 컨테이너 검사와 청소, 개방 업무 등을 지시할 수 없도록 ‘안전 운임제 고시’까지 개정했다. 회사가 이 규정만 지켰더라도 참변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공공운수노조가 서울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구의역 김군’ 5주기를 맞아 사고 현장에 설치한 조형물에는 ‘일하며 살고 싶다, 살아서 일하고 싶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런 기본적인 요구조차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사회에서 ‘노동 존중’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