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자석
이젠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것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교육부는 영어 조기교육 확대로 인적자원을 국제화하고 한 해 30억달러에 이르는 국외유학·연수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인적자원을 국제화하기 위해 영어 조기교육을 한다는 건 잘못된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이 만든 틀에 우리를 맞추려고 하는 것만이 국제화는 아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주목하도록 만들고, 우리가 만든 틀에 그들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 역시 국제화다. 우리나라 전자기술들이 국제표준으로 정해지고, 한류 열풍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우리말을 배우고 있는 ‘국제화 시대’에 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외국의 틀에 맞추는 것부터 가르치려고 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 국외유학·연수를 줄이겠다는 것도 현상에 대한 원인을 잘못 판단한 결과다.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영어공부를 시키려고 어려서부터 외국에 내보내는 근본적인 까닭은 입시 중심의 교육정책에 있다. 내 나라 말이 아닌 영어가 입시에 큰 영향을 끼치다 보니, 조금이라도 입시에 유리하게 하려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면 11년 뒤 입시경쟁을 지금보다 더 치열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외 유학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돈이 줄어드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교육부가 진정으로 국외유학비와 연수비로 외국에 나가는 30억달러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고 들 것이 아니라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가뜩이나 외래어와 한자어, 인터넷 채팅언어(소위 외계어)가 쏟아지는 상황에 아이들에게 올바른 우리말을 가르치고 외계어, 한자어, 외래어의 문제점을 인식시켜도 모자랄 처지다. 사교육을 더욱 부추겨 성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만 심화시킬 정책을 왜 시행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박찬길/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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