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된 농업경제 연구자 출신에도 “사표내라”
정부, 국책연구기관장 일괄사표 요구 물의
20~30년 잔뼈 굵은 전문가들 등 떠밀려
연구원들 “정권교체때 이런 전례 없었다”
20~30년 잔뼈 굵은 전문가들 등 떠밀려
연구원들 “정권교체때 이런 전례 없었다”
정부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국책 연구기관(23개) 기관장들에게 일괄사표 제출을 요구한 데 대해 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학계·연구 전문가들로 기관장을 충원해 온 연구기관의 특수성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정부가 ‘정치적 낙하산’ ‘코드 인사’라며 사표를 요구해 온 공기업과도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올 9월까지가 임기인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1981년부터 이 연구원에서 근무한 전문가다. 최 원장은 2003년 3월부터 04년 12월까지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으로 일한 것을 제외하곤 연구원을 떠난 적이 없다. 지난해 6월 한국노동연구원장에 취임한 최영기 원장은 88년 연구원 설립 때부터 일한 창립 멤버다. 최 원장도 김영삼 정부 시절 1년6개월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 나갔던 기간을 빼고는 이 연구원에서 일했다. 이 밖에도 오상봉 산업연구원 원장,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 등도 모두 해당 기관에서 20~30년씩 잔뼈가 굵은 연구자 출신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정권교체를 이유로 임기를 마치지 않은 연구기관 책임자들의 일괄 사표를 요구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며 “연구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중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직업능력개발원 관계자는 “임기를 못 채우고 나간 원장은 없다. 1~2대 원장은 교육학 전공자, 3대 원장부터 노동 전문가로 관련 전문성을 갖춘 분이었다”며 “연구기관 책임자는 소신껏 일하도록 임기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법률상 국책 연구기관장의 임면권은 총리실 산하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있다. 애초 이들 연구기관은 각 부처의 산하기관이었다. 그러나 99년 제정된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 부처 산하에 흩어져 있던 국책 연구기관들은, 신설된 경제사회연구회와 인문사회연구회 산하기관으로 조직 편제가 바뀌었다. 그 후 2005년 두 연구회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 통합된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이 각 부처의 국책과제 연구를 수행하되, 기관장 등 인사 관련 사항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주관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각 부처로부터 국책 연구기관 연구의 독립성과 객관성·전문성을 확보하려는 조처였다.
정부의 최근 처사는 이런 제도개선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의 일괄 사표는 국책 연구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며 “과거 정부가 국책 연구기관을 직접 관리·통제하는 방식으로 퇴행하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연구기관장들은 현재 이종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한 사람을 빼고 모두 사표를 낸 상태다. 이 원장은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자율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연구기관장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표를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학문 발전을 위해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법 절차에 따라 공모된 기관장들한테 사표를 강요하는 것은 법 절차를 무시한 업무방해”라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대안교육을 전공한 교육학 박사로, 지난해 8월에 원장으로 임용됐다.
박병수 이종규 기자 suh@hani.co.kr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연구기관 원장 임기 현황
박병수 이종규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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