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성추행 사건, 국무총리의 골프 등을 둘러싸고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막상 본연의 업무인 입법 활동에는 손을 놓고 있다. 균열과 대립을 조정하고 통합해 제도적으로 풀어내는 구실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1년5개월째 끌어온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이번에도 처리하지 못했다. 환경노동위원회가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면서까지 비정규직 법안을 가결했으나,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다툼 속에 법사위와 본회의에선 발이 묶여 버렸다. 그러려면 뭐하러 그런 소동을 벌였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덩달아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30여건의 법안 역시 해당 상위를 통과하고도 다음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져 버렸다. 할 일 못하는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전략 없는 남탓타령 당
열린우리당, 비정규직법 등 지도력 부족 ‘허둥’ 열린우리당은 2월 국회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적잖은 미숙함을 드러냈다. 상황판단이 안이했고, 지도부의 지도력도 부족했다. 정국 운영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으로서 ‘남 탓만 한다’는 질책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지난달 27일 한나라당과의 공조 속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전격 처리했으나, 본회의 처리엔 실패했다. 한 재선 의원은 3일 “논란이 뜨거운 법안을 미숙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결국 노동계만 자극한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질서유지권 발동이라는 강제력에 의존함으로써 명분을 잃은 상황에서, 본회의 처리에 실패해 실리마저도 놓쳤다는 비판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자성론이 높다. 지난 2일 본회의에 앞서 열린 두 차례의 의원총회에서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반드시 법안을 처리하라고 해서 한나라당의 무리한 요구까지 수용해 가며 통과시켰는데, 도대체 원내대표단은 뭐 하고 있는 거냐”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의원들은 “여당이 한나라당의 ‘최연희 물타기’에 동조해준 셈”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여당은 비정규직 법안과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을 다음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으나, 지방선거가 닥친 상황이어서 처리 전망은 불투명하다. 다음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 법안은 또다시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여당의 원내 지도부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탓하기’에 더 골몰하는 모습이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의 ‘태도 돌변’과 민주노동당의 점거농성을 비난하면서, “비정규직 법안이 상임위 차원에서 매듭지어졌다는 것은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 아니냐. 시간적으로 늦춰져 안타깝긴 하지만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자평했다.
이지은 기자 당론 엎는 오락가락 당
한나라당, 처리연기->즉각처리->연기 2월 국회에서 보인 한나라당의 태도는 ‘오락가락’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처리 연기→즉각 처리→처리 연기’로 변신을 거듭해 당론이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지도부는 소속 상임위 의원의 개인 ‘소신’에 휘둘리는 등 지도력 부재 양상도 드러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과의 야4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다음 임시국회로 미루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뒤이어 열린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는 “양당 정책협의회에서 논의하자”고 다른 소리를 했다. 불과 몇시간 만에 ‘처리 불가’에서 ‘유보적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하룻만에 “2월 임시국회 처리”로 180도 바뀐다. 이번엔 이방호 정책위의장이 나섰다. 이 의장은 지난달 23일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의 양당 정책협의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상임위에 맡겨 조속히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소속인 이경재 환경노동위 위원장은 27일 질서유지권을 동원해 비정규직 법안을 강행처리했다. 같은 당의 안경률 원내수석부대표조차 질서유지권 발동을 뒤늦게 알았을 정도의 ‘전격작전’이었다. 한나라당은 여기서 한 번 더 변신한다. 이번엔 안상수 법제사법위 위원장이 나서서 ‘다른 위원회에서 회부된 법안은 5일 뒤 상정할 수 있다’는 ‘5일 경과규정’을 이유로 법안 처리를 거부했다. 결국 이 원내대표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2일 “비정규직 법안을 다음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고 확인했다. 한나라당은 제1야당으로서 책임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한 채 상황과 유불리에 따라 오락가락하다가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박병수 기자 실익 없는 실력저지 당
민주노동당, ‘잦은 점거’ 명분-실리 사이 고민 민주노동당은 지난달 28일부터 사흘 동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해, 결국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연기시켰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남는 장사’를 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엇갈린다.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결국엔 뜻대로 관철시키지 못할 일을 가지고 다른 법안 처리까지 막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무엇보다, ‘습관성 실력저지 정당’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적지 않다. 민주노동당이 국회 회의장을 점거한 것은 지난해 이후 모두 8번이며,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서만 5차례에 이른다.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을 지난해 2월과 6월에 두 차례, 올해 2월에 두 차례 점거했고, 지난달 28일부터는 법사위 회의장을 사흘간 점거했다. 민주노동당은 또 쌀 협상 비준 동의안에 반대하며 지난해 9~10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장을 모두 세 차례 점거하기도 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지난 2일 국회 법사위를 점거하는 바람에 재래시장특별법 개정안 등 32개 민생법안의 처리가 덩달아 뒤로 미뤄진 대목에 대해선 민주노동당으로서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회의장 점거는 우리로서도 ‘독약’ 같은 선택”이라며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없으면서도 노동계와 농민을 의식해 의사표시만 하고 ‘운동권 정당’의 인상만 강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비정규직 법안과 쌀 협상 비준 동의안과 같은 핵심적 사안에서만 실력저지를 해왔다”며 “이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소수 정당으로서 달리 의견을 관철시키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방향 잃은 국회
열린우리당, 비정규직법 등 지도력 부족 ‘허둥’ 열린우리당은 2월 국회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적잖은 미숙함을 드러냈다. 상황판단이 안이했고, 지도부의 지도력도 부족했다. 정국 운영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으로서 ‘남 탓만 한다’는 질책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지난달 27일 한나라당과의 공조 속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전격 처리했으나, 본회의 처리엔 실패했다. 한 재선 의원은 3일 “논란이 뜨거운 법안을 미숙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결국 노동계만 자극한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질서유지권 발동이라는 강제력에 의존함으로써 명분을 잃은 상황에서, 본회의 처리에 실패해 실리마저도 놓쳤다는 비판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자성론이 높다. 지난 2일 본회의에 앞서 열린 두 차례의 의원총회에서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반드시 법안을 처리하라고 해서 한나라당의 무리한 요구까지 수용해 가며 통과시켰는데, 도대체 원내대표단은 뭐 하고 있는 거냐”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의원들은 “여당이 한나라당의 ‘최연희 물타기’에 동조해준 셈”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여당은 비정규직 법안과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을 다음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으나, 지방선거가 닥친 상황이어서 처리 전망은 불투명하다. 다음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 법안은 또다시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여당의 원내 지도부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탓하기’에 더 골몰하는 모습이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의 ‘태도 돌변’과 민주노동당의 점거농성을 비난하면서, “비정규직 법안이 상임위 차원에서 매듭지어졌다는 것은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 아니냐. 시간적으로 늦춰져 안타깝긴 하지만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자평했다.
이지은 기자 당론 엎는 오락가락 당
한나라당, 처리연기->즉각처리->연기 2월 국회에서 보인 한나라당의 태도는 ‘오락가락’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처리 연기→즉각 처리→처리 연기’로 변신을 거듭해 당론이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지도부는 소속 상임위 의원의 개인 ‘소신’에 휘둘리는 등 지도력 부재 양상도 드러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과의 야4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다음 임시국회로 미루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뒤이어 열린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는 “양당 정책협의회에서 논의하자”고 다른 소리를 했다. 불과 몇시간 만에 ‘처리 불가’에서 ‘유보적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하룻만에 “2월 임시국회 처리”로 180도 바뀐다. 이번엔 이방호 정책위의장이 나섰다. 이 의장은 지난달 23일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의 양당 정책협의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상임위에 맡겨 조속히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소속인 이경재 환경노동위 위원장은 27일 질서유지권을 동원해 비정규직 법안을 강행처리했다. 같은 당의 안경률 원내수석부대표조차 질서유지권 발동을 뒤늦게 알았을 정도의 ‘전격작전’이었다. 한나라당은 여기서 한 번 더 변신한다. 이번엔 안상수 법제사법위 위원장이 나서서 ‘다른 위원회에서 회부된 법안은 5일 뒤 상정할 수 있다’는 ‘5일 경과규정’을 이유로 법안 처리를 거부했다. 결국 이 원내대표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2일 “비정규직 법안을 다음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고 확인했다. 한나라당은 제1야당으로서 책임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한 채 상황과 유불리에 따라 오락가락하다가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박병수 기자 실익 없는 실력저지 당
민주노동당, ‘잦은 점거’ 명분-실리 사이 고민 민주노동당은 지난달 28일부터 사흘 동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해, 결국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연기시켰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남는 장사’를 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엇갈린다.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결국엔 뜻대로 관철시키지 못할 일을 가지고 다른 법안 처리까지 막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무엇보다, ‘습관성 실력저지 정당’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적지 않다. 민주노동당이 국회 회의장을 점거한 것은 지난해 이후 모두 8번이며,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서만 5차례에 이른다.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을 지난해 2월과 6월에 두 차례, 올해 2월에 두 차례 점거했고, 지난달 28일부터는 법사위 회의장을 사흘간 점거했다. 민주노동당은 또 쌀 협상 비준 동의안에 반대하며 지난해 9~10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장을 모두 세 차례 점거하기도 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지난 2일 국회 법사위를 점거하는 바람에 재래시장특별법 개정안 등 32개 민생법안의 처리가 덩달아 뒤로 미뤄진 대목에 대해선 민주노동당으로서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회의장 점거는 우리로서도 ‘독약’ 같은 선택”이라며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없으면서도 노동계와 농민을 의식해 의사표시만 하고 ‘운동권 정당’의 인상만 강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비정규직 법안과 쌀 협상 비준 동의안과 같은 핵심적 사안에서만 실력저지를 해왔다”며 “이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소수 정당으로서 달리 의견을 관철시키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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