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 고진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 공식선언
원 “한나라당 바꿔야” 고 “행복국가 만들겠다”
원희룡,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은 12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대선후보 당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출마 선언에 앞서 당 경선관리위원회에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원희룡 의원은 “노무현 정권과 대한민국의 정치풍토, 한나라당을 이번에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맨주먹으로 기적을 일군 산업화 세대에게 배우며, 피 뿌려 민주화를 이룩한 세대들과 함께 다가올 통일의 세대를 준비하겠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그는 “대기업의 독점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이 공정 거래로 일류기업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이른바 ‘빅2’ 중심의 경선 구도에서 소외되는 데 대한 서운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원 의원은 검증위원회의 비공개 원칙에 문제를 제기하며, “철저한 근거 제시와 실명제를 전제로, 주자·언론·국민이 검증 상황에 수시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의원의 출마선언에는 김명주 의원 등 지지자 50여명이 참석했다.
이어 경선 출마를 선언한 고진화 의원은 “국민과 함께 행복국가,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 의원은 “이제 대한민국의 가치는 생명, 평화, 행복의 3대 가치”라며 △한민족 통일·동아시아 평화 실현 △국민 대연합 정부 건설 △생명의 평화경제 추진 △사회투자국가 전략 △한류·정보기술 중심의 문화대국 등을 5대 국정지표로 발표했다. 검증 논란에 대해 고 의원은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국방, 교육, 근로, 납세, 도덕성, 재산 등에서 국민적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검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의원의 출마선언에는 초록색 풍선을 든 지지자 50여명이 함께 했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수석·최연소 꼬리표 단 ‘개혁파’ 원희룡 의원은 ‘학력고사 전국수석’ ‘서울대 수석입학’ ‘사법고시 수석’ 등 그의 표현을 빌면, ‘한 공부 하는 것’으로 세상에 먼저 알려졌다. 제주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입학 후 자연스레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구로공단 야학, 금속공장 위장취업 등 뜨거운 80년대를 보냈다. 1989년 사회주의권 붕괴로 이념적 혼돈을 겪은 그는 사법고시로 행로를 바꿔 1992년 사시에 수석 합격했다. 검사·변호사 생활을 거쳐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4년 최고위원 선거에선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2위 득표를 기록하며 ‘최연소 최고위원’에 올랐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탄핵·이라크파병 반대 ‘소신’ 고진화 의원에겐 늘 ‘한나라당 왕따’란 별명이 따라붙는다. 성균관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를 주도하는 등 활발한 운동 경력을 지닌 그는 늘 보수적인 당론과 맞서왔다. 그는 탄핵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이라크 파병 반대를 외쳤다. 정치엔 1996년 통합민주당에 합류하며 입문했다. 그해 총선엔 서울 강서을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0년 한나라당에 전격 합류한 뒤 2004년 서울 영등포 갑에서 당선됐다. 당시 여의도 파천교 아래 천막을 짓고 당의 환골탈태를 외쳤다. 고 의원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행복지수는 102위에 불과한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원희룡 / 고진화
수석·최연소 꼬리표 단 ‘개혁파’ 원희룡 의원은 ‘학력고사 전국수석’ ‘서울대 수석입학’ ‘사법고시 수석’ 등 그의 표현을 빌면, ‘한 공부 하는 것’으로 세상에 먼저 알려졌다. 제주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입학 후 자연스레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구로공단 야학, 금속공장 위장취업 등 뜨거운 80년대를 보냈다. 1989년 사회주의권 붕괴로 이념적 혼돈을 겪은 그는 사법고시로 행로를 바꿔 1992년 사시에 수석 합격했다. 검사·변호사 생활을 거쳐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4년 최고위원 선거에선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2위 득표를 기록하며 ‘최연소 최고위원’에 올랐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탄핵·이라크파병 반대 ‘소신’ 고진화 의원에겐 늘 ‘한나라당 왕따’란 별명이 따라붙는다. 성균관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를 주도하는 등 활발한 운동 경력을 지닌 그는 늘 보수적인 당론과 맞서왔다. 그는 탄핵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이라크 파병 반대를 외쳤다. 정치엔 1996년 통합민주당에 합류하며 입문했다. 그해 총선엔 서울 강서을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0년 한나라당에 전격 합류한 뒤 2004년 서울 영등포 갑에서 당선됐다. 당시 여의도 파천교 아래 천막을 짓고 당의 환골탈태를 외쳤다. 고 의원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행복지수는 102위에 불과한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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