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0일 낮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청와대에 도착,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안병훈 등 분주히 만나 ‘개헌·총리론 등’ 의견나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요즘 바쁘다. 최근 공식 일정은 30일 출발하는 4박6일간의 몽골 방문 정도다. 하지만 그는 지난주 내내 안병훈 전 경선캠프 선거대책위원장, 최병렬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비롯해 자문 교수단과 측근 의원들을 두루 만났다. 그는 이들에게 “오늘은 주로 들으러 왔다”며 나아갈 길을 물었다고 한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지금 상황을 답답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들이 전한 말을 모아보면, 박 전 대표는 최근 당 안에서 말이 많은 조기 전당대회 참여 문제 등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것 같다. 당 쇄신위와 친이 쪽에선 화합형 전당대회를 명분 삼아 박 전 대표의 참여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모임에서 “과거 야당 대표를 할 때와 달리 지금은 내가 대표를 맡아 여러 정책을 약속할 수도 없고 실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고 그를 만난 인사들이 전했다. 국정기조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당 대표를 맡을 수 있느냐는 항변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에게 국정기조를 바꾸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또 이 대통령이 바꿀 것 같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표를 맡을 경우 자칫 여권 내 갈등만 증폭될 것이라는 상황 인식이다.
박 전 대표는 또 “이러면 결국 당정이나 당내 마찰만 심화되고 국민들의 신뢰만 잃게 된다. 이러면 내가 각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지금은 가만 있는 것이 (이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도 상황적 한계를 느끼는 것 같다”며 “기본적으로 지금은 신명을 다해 일할 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칫 이 대통령과 친이 쪽의 ‘재보선과 지방선거 득표용 카드’로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이라며 암시한 개헌 문제에도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한 참모는 “박 전 대표가 개헌 자체엔 관심이 많다”며 ”그러나 최근 여권에서 거론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엔 부정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측근들은 이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중대선거구제 개편이나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던질 때, 박 전 대표가 이를 반대하면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이미지를 덧쓰게 될까 고민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박 전 대표의 고민은 지금껏 이어온 침묵과 ‘낮은’ 행보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지, 향후 자신의 활로를 어떻게 개척할지로 모인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도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적잖이 곤혹스러워한다”며 “당장 어떤 태도를 표시하진 않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펼지 서서히 정리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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