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은 4대강 예산을 두고 여야가 가파르게 대치해온 새해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양보와 타협”을 강조해 왔다. “극단적 파국을 막겠다”며 의장이 미리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는 결기까지 내보였다.
그러나 김 의장은 31일 결국 여당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김 의장은 이날 아침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마련한 2010년도 예산안을 장소를 바꾼 끝에 편법 날치기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과시키자 기다렸다는 듯 예산 처리에 필요한 예산부수법안 직권상정 절차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날치기한 지 불과 3시간여 만인 오전 10시15분께 “법사위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 등 9개 법안에 대해 오후 1시30분까지 법제사법위원회가 심사를 완료해 달라”며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심사 기한을 지정한 것이다.
김 의장은 여야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도 “표결 처리”를 운운하며 야당을 압박했다. 또 28일 밤부터는 본회의장 의장석을 스스로 점거해 야당으로부터 “쇼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위해 자리를 맡아둔 것이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김 의장은 이날 예산안 통과에 필수인 지방교부세법 개정안 등 일부 예산부수법안을 심사기일 지정에서 빠뜨려, 본회의가 밤 8시에야 열렸다. 성급히 여당을 도우려다 스스로 자책골을 넣고 만 셈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스타일리스트인 김 의장이 체면 유지를 하려고 가급적 적은 수의 예산부수법안을 추리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뒤늦게 이를 알아챈 뒤 나머지 예산부수법안에 추가로 심사기한을 지정했다.
또 김 의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에 대해서는 말을 바꾸면서까지 결국 한나라당 편을 들었다. 그는 여야 합의 없는 노조법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차례 공언했지만, 친정인 한나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1일 새벽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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