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과 함께가자” 말뒤집고 친수법·파병안도 ‘몰아치기’
질서유지권·경호권 등 ‘신속’…중립 ‘국회수장’ 본분 저버려
질서유지권·경호권 등 ‘신속’…중립 ‘국회수장’ 본분 저버려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자. 좀 더디 가더라도 야당과 함께 가자.”
지난 6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하수들이 어설프게 하는 것”(지난 10월 한 인터뷰)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8일 한나라당이 2011년도 예산안을 조기에 강행처리하면서 김 원내대표의 말도 흰소리가 됐다.
6월 임시국회까지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일부 강경파에게서 “야당에 끌려다닌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철회하고, 야당의 스폰서 검사 특별검사법을 수용했다. “타협의 정치를 복원했다”는 평이 나왔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는 상생정치의 마지막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예산은 양보 못한다.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다”며 그는 강경의 선봉에 섰다.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예결위와 국토위 한나라당 소속 위원장들에겐 예산과 법안 처리를 재촉했다. 그는 7일 밤 소속 의원들을 이끌고 민주당 의원들이 점거한 본회의장에 직접 들어가 팔을 걷고 야당 의원의 멱살을 잡는 일도 불사했다. 그는 8일 여야가 대치하던 본회의장에선 당 소속 의원들에게 “앞으로 나오라”며 민주당 의원들을 밀어낸 뒤 의장석을 차지할 것을 독려했다. 김 원내대표는 예산안 단독처리 뒤 한 간담회에서 “(회기 내 예산안 통과는)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향후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 만큼 관철시키겠다”고 덧붙였다.
박희태 의장은 중립적이고 초당적인 국회수장이 아니라 여당 대표 같은 모습을 보였다. 박 의장은 7일 자신이 주선한 두차례 여야 원내대표 회담이 결렬되자, 기다렸다는 듯 한나라당의 손을 들었다. 7일 밤엔 14건의 예산부수법안에 관해 8일 오전 10시까지 심사기일을 지정했다. 8일 오전엔 아랍에미리트 파병 동의안과 친수구역 활용 특별법안 등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가 포함된 10개 법안의 심사기일을 오전 11시로 정했다. 친수구역법은 국토위 심의·처리에 이어 법사위 상정, 심의·처리 등의 과정을 고려하면 물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시간이다.
이어 그는 본회의장 내 질서유지권에 이어 경호권까지 발동했다. 한나라당의 예산 강행처리에 필요한 조처는 모두 내린 셈이다. ‘최다 직권상정 의장’이라고 불렸던 김형오 전 의장과도 견주기 어려울 정도의 신속한 ‘대여 협조’였다. 김 전 의장은 직권상정 범위를 예산부수법안에 한정하고 수차례 여야에 냉각기를 줬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국회의장의 권위를 잃어버린 참으로 불행한 정치인이 됐다고 박 의장에게 말했다”고 비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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