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여론 험악해지자
“해당 부처·위원회가 결정”
“해당 부처·위원회가 결정”
“온 나라가 시위장이 됐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10일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놓고 영남권과 충청권 등 각 지역과 해당 지역의 의원 및 사회단체 등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건 주요 국책사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갈등 조정자로서의 부담을 떠안지 않겠다는 태도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종합편성채널 선정 문제를 초반에 청와대가 개입하다가 나중에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전적으로 넘겼듯이, 과학벨트와 신공항 문제도 각각 4월 출범할 과학벨트위원회와 국토해양부가 객관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예정됐던 입지 결정을 여러 차례 미루는 등 정부가 약속을 어긴 결과 갈등이 더욱 커졌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 친이 직계인 조해진 의원은 이날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이 대통령의 공약이었는데도 지역에서 치러지는 재보궐선거 등 정치적 상황에 밀려 미뤄졌다”며 “이 때문에 지역 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지역의 다른 의원은 “과학벨트 문제는 지난해 6월 세종시법 수정안이 부결됐을 때 ‘충청이다, 아니다’를 분명히 했어야 한다”며 “지역 갈등과 사회적 신뢰 추락, 정치권 논쟁 등 서둘러 정책 결정을 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사회적 비용을 단단히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남권 신공항은 2009월 3월로 예정됐던 입지 선정이 3차례나 연기됐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문제 역시 애초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충청권 유치를 공약했지만 지난해 12월 입지를 명시하지 않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이 강행 통과됐고, 이 대통령이 지난 1일 방송좌담회에서 “공약집에 있던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 국책사업 추진을 미룬 것은 4대강 사업 등에 ‘올인’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은 “4대강이나 개헌 등 오직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는 일만 서두를 뿐 다른 국정운영에 관한 로드맵은 없는 것 같다”며 “4대강에 다걸기하다가 다른 것은 다 놓쳤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지역 균형발전보다는 서울, 수도권을 더욱 중시하는 이 정권의 정책 기조도 지역 국책사업이 미뤄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접근법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무능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이나 천성산 터널 문제 등 지역, 부처 간 의견이 갈리는 갈등 사안이 불거졌을 때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전면에 나서 해법을 모색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했던 것과도 대비된다.
박태순 소장은 “중앙정부는 지자체 사이의 갈등을 푸는 조정자 구실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구실을 방기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반목과 질시가 누적돼 결국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연철 황준범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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