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례 어땠나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5차례의 대통령 선거 가운데 4차례 ‘대세론’이 있었다. 특정 후보가 대선을 한두 해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3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독주할 때마다 대세론이 나왔다.
1992년 김영삼 후보, 1997년과 2002년 이회창 후보, 2007년의 박근혜 전 대표 등이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다. 이인제 의원과 박찬종 전 의원, 고건 전 시장도 대세론의 파도를 탄 적이 있다. 이들 가운데 청와대 주인이 된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뿐이다.
대세론마다 성격은 조금씩 달랐다. 1992년 박찬종 전 의원과 2007년 고건 전 시장의 경우, 지지율이 한때 40%까지 솟구치기도 했지만 일종의 ‘거품’이었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서 여권과 야권 지지층 양쪽으로부터 얻은 반사이익에 근거한 지지율이어서 선거구도가 제대로 짜이면서 순식간에 꺼졌다. 두 사람 모두 깨끗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지지율을 쌓았지만 충성도가 낮은 허약한 지지율이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년 대선을 맞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이 가장 신경을 쓰는 건, 이회창 후보의 경우다. 이 후보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을 앞두고 30% 이상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예비 대통령’이었다. 그는 올해 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엔 나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두 차례 모두 원내 제1당의 후보로서 탄탄하게 바닥이 다져진 지지율이었지만 결국 39만표, 57만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꺼지진 않았지만 아들의 병역비리라는 걸림돌에다 상대 김대중, 노무현 후보의 선전에 무너졌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을 분석해보면 박찬종 전 의원, 고건 전 시장 등의 경우와 달리 매우 견고하다”며 “다만, 야권이 어떤 후보를 내느냐에 따라 이회창 대세론 때와 같이 박빙의 싸움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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