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4단체장 한자리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맨 오른쪽)과 경제단체장들이 17일 오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열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공청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경제4단체장들이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재계대표들, 국회 공청회 출석
“납품단가 후려치기 일부 회사의 문제”
전경련 국회로비 문건 추궁에 “난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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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2분, 그가 회의장에 들어서자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벌게진 얼굴의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인사말이 적힌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참석한 탓인지 발음이 어긋나고 문장도 엉켰다. 국회가 요청한 지 50여일 만인 17일 지식경제위원회 공청회에 모습을 드러낸 허 회장은 “해외 발주 관계로 조금 늦었다. 송구스럽다”고 사과부터 했다.
이날 아침까지도 허 회장은 국외 일정을 이유로 공청회에 불참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국회를 농락하고 국민을 무시한다는 거센 비판에 갑자기 공청회 출석으로 태도를 바꿨다. 허 회장이 나타나자 의원들은 “참, 얼굴 뵙기가 어렵다”고 비꼬았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주제로 한 이날 공청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탐욕, 야수, 정글, 먹이사슬 등의 원색적 단어를 동원해 대기업 행태를 비판했다. 공청회엔 허 회장을 비롯해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경제단체장들이 국회 공청회에 나란히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경위는 지난 6월29일 허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을 불러 대기업·중소기업 상생방안을 다루는 공청회를 열었으나 허 회장 등 핵심 관계자들이 불참해 ‘반쪽 공청회’로 끝났다. 이후 거센 비판 여론이 일면서 이날 공청회가 다시 열렸다.
의원들의 질타에 허 회장은 간혹 자세를 낮췄지만 곤란한 질문엔 “검토해 보겠다”는 의례적인 답변으로 넘어갔고, 때론 억울함을 표시했다. 의원들이 대기업의 횡포를 지적하자 그는 “홍보가 잘못됐다. 사실이 잘못 알려졌다”고 응수했다.
허 회장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 재래시장을 황폐하게 만드는 대기업의 행태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기술을 탈취하는 악질적인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고 따지자, 허 회장은 “일부 회사가 하는 것인데 (이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고 넘겼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법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의 지적에도, “법으로 강제하는 게 양쪽에 이익이 되는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사실상 반대했다. 허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을 조정하는 수탁기업운영협의회에 관한 물음에 개념을 몰라 머뭇거리다 김재균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이것도 모르느냐. 먹통이시구먼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허 회장은 법인세 추가 감세 철회 여론도 외면했다. “부자의 세금을 더 올리라는 미국의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차원에서 전경련이 이를 먼저 이야기할 용의가 있느냐”(김진표 민주당 의원), “이명박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이 법인세를 내려줬는데 이제 추가 감세는 필요 없다고 발표할 생각이 있느냐”(정태근 의원)는 물음에 허 회장은 “우리 자체 조사를 보면 법인세 감세로 투자가 늘었다고 나온다”며 “생각은 한번 해보겠다”고만 답했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과 법인세 감세 등으로 혜택을 받은 대기업이 일자리 창출 등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허 회장은 “노력은 많이 했는데 일부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확대재생산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경련의 국회의원 로비 문건도 도마에 올랐다.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전경련이 ‘전국경제인로비연합회’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허 회장은 “신문을 보고 그 사건을 알았다. 그걸 어떻게 제가 지시했겠는가”라며 “그런 일이 보도된 것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전경련이 미국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새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하자 허 회장은 “좋은 이야기다. (전경련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직원에게 얘기해서 검토해 보자고 한 상태”라고 답했다.
의원들은 이날 공청회에서 허 회장 등이 보여준 행태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박진 의원은 공청회가 끝난 뒤 “전경련이 자기 보호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줘 국민들이 많이 실망할 것”이라며 “전경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한 간부는 “대기업 잘못도 있지만, 그걸 정치인이 질책하는 건 이상하다”며 “사회적 안전망의 책임은 정치권 몫인데 대기업에 복지 부담을 다 떠넘기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성연철 임인택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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