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방문 여야 지도부와 만나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 3개월 안에 미국에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관해 재협상을 요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비준 전에 재협상을 해야 한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오후 국회를 방문한 이 대통령은 박희태 국회의장,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와 황우여 원내대표,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책임지고 미국과 재협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면담 뒤 대책을 논의한 결과 이 대통령의 제안을 받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섭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의 제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회동 내용을 설명하면서 “손학규 대표는 한-미 에프티에이 통과를 위해서는 최소한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며 “다만 손 대표는 대통령의 제안이 있으니 당내에 이를 전달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제안은 지난달 31일 민주당 의총에서 거부된 황우여 한나라당,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간 합의 사항과 같은 수준이라고 민주당은 받아들이고 있다. 당시 두 원내대표는 국회가 비준안을 통과시키면 3개월내 아이에스디 재협상을 위한 한-미 정부간 논의기구를 마련한다는 절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민주당은 16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대통령 제안 수용 여부에 대한 당론을 확정할 예정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통령에 제안에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당내에는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과 ‘무게있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의총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대통령의 약속이기 때문에 좀더 깊이 무게있게 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비준안을 발효시키고 나서 언제 재협상을 한다는 것이냐. 대통령의 제안은 무책임의 극치”라며 “민주당이 이미 의원총회에서 뒤집은 안인 만큼 현명하게 판단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도부부터 쇄신파까지 일제히 이 대통령의 제안이 새로운 것이라며 민주당이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저녁 기자들과 만나 “이제 민주당 요구는 다 들어줬다”며 “당론을 모아 절차대로 집행하겠다”고 말해, 민주당이 거부할 경우 강행처리할 뜻을 비쳤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일국의 정상이 아이에스디 관련 재협상을 개런티(보장)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 처리를 강조해온 ‘국회바로세우기모임’의 김세연 의원도 “여야간에 막혀 있던 대화의 물꼬를 터준 큰 결단”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16일 의총을 통해 제안을 최종 거부할 경우, 한나라당도 이날 의총에서 처리 당론을 모은 뒤 24일 본회의에서 비준안 강행처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태희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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