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009년 7월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상임전국위원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왼쪽은 박희태 당시 당 대표.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누군 50억 썼네, 누군 20억 써 떨어졌네” 어김없이 나돌아
전대출마 의원 “일부선 상대후보는 실탄 줬다며 돈 요구”
“부패한 집단 찍힐라” 걱정…‘고승덕 폭로’ 원망 목소리도
전대출마 의원 “일부선 상대후보는 실탄 줬다며 돈 요구”
“부패한 집단 찍힐라” 걱정…‘고승덕 폭로’ 원망 목소리도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한 전직 당 대표의 ‘돈봉투 살포’는 전당대회 국면에서 이뤄졌다. 현 정권에서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박희태 국회의장이 대표로 당선된 2008년, 안상수 대표 체제를 출범시킨 2010년, 그리고 홍준표 대표를 뽑은 2011년 세차례 열렸다. 전당대회 때마다 돈봉투 살포 얘기가 나돌았지만 구체적인 사례가 폭로된 것은 처음이다.
고 의원은 지난해 12월14일치 <서울경제>에 쓴 칼럼에서 “전대 당시 한 후보자가 돈을 건네 돌려준 일이 있는데 대표에 당선된 뒤 사이가 싸늘해졌다”며 “지금까지도 그 선배의 냉대는 계속되고 있고 필자에게 죄가 있다면 당내 선거에서 돈을 말없이 돌려주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몰랐던 점이다”라고 썼다. 고 의원은 이런 사실을 4일 언론 인터뷰와 5일 지역구 행사에서 거듭 밝혔다.
고 의원은 파문이 확산되자 5일 자신의 누리집과 트위터에 글을 올려 “글을 쓸 당시 한나라당은 재창당 여부에 대해 뜨거운 논란이 벌어진 때였고 저는 재창당에 반대하고 있었다”며 “재창당은 반드시 전대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전대에서 나타난 줄세우기, 편가르기 등 후유증이 걱정돼 재창당 없이 비대위로 가야 한다는 것이 칼럼의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특정인을 겨냥한 폭로 의도는 전혀 없었다. 투명하지 못한 정치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전대 과정에서 돈이 뿌려진다는 것은 당 주변에선 “알 만한 사람은 아는”(한 서울 초선 의원)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대가 ‘전(錢)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8대 국회 들어 치러진 세차례의 전당대회 뒤엔 항상 “어느 후보가 50억원 썼네, 어느 후보는 20억원을 써서 떨어졌네”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떠돌았다. 2010년 7월 전당대회에서 안상수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홍준표 의원은 전대 다음날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역시 바람은 돈과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한 의원은 “최소 3억~4억원은 써야 한다”며 “일부 지역에선 아예 노골적으로 상대 후보는 이미 잘 대접하고 실탄도 주고 갔다면서 돈을 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지낸 한 인사는 “2008년 전당대회 당시 한 후보자가 도와달라며 만나자고 했는데 나가지 않았다”며 “100% 돈을 건네겠다는 것인데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1만명 안팎인 선거인단에서 원내외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영향력이 막강해서 이들에게 잘 보이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 의원에게 돈봉투를 건넨 당사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를 부인했다. 박희태 국회의장 쪽은 “우린 전혀 돈을 준 사실이 없다”며 “고 의원이 누군지 명확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의원에게 직접 돈봉투를 건넨 당사자로 당내에서 지목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나라당에선 차떼기에 버금가는 악재가 터졌다며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너무 충격이 커 멍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 서울 초선 의원은 “의원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으면 당이 엉망이 될 것 같다”며 “당 전체가 차떼기 당 시절처럼 돈이나 받고 부패한 집단으로 찍힐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고승덕 의원이 경솔했다는 원망도 나왔다. 한 서울 의원은 “쇄신 시점에 뭐가 좋은 것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고 의원이 지역구 공천 문제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시선도 있다.
오종식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당 대표까지 돈으로 사는 정당, 정말 한나라당은 만사가 돈이면 다 되는 ‘만사돈통’ 정당인가”라며 “고승덕 의원은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논평했다. 성연철 황준범 기자 sychee@hani.co.kr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표로 선출된 한 후보에게서 돈봉투를 받았다가 돌려줬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고 의원이 지난해 7월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오종식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당 대표까지 돈으로 사는 정당, 정말 한나라당은 만사가 돈이면 다 되는 ‘만사돈통’ 정당인가”라며 “고승덕 의원은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논평했다. 성연철 황준범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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