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윗선’ 밝힌 고씨 왜
박희태 국회의장이 9일 전격 사퇴한 데엔 자신의 비서를 지낸 고명진씨의 검찰 진술 번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박 의장과 같은 경남 남해 출신인 고씨는 지난 17대 국회까지 박 의장을 보좌했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박 의장의 지역구에 당선된 여상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실로 자리를 옮겨 보좌관을 맡았다. 그는 돈봉투가 나돈 2008년 7·3 전당대회에 박 의장 캠프에 참여해 재정·조직 담당이던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과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그동안 검찰 조사에서 고승덕 의원 쪽이 되돌려준 돈봉투를 받긴 했지만 “300만원은 내가 개인적으로 썼고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는 최근 태도를 바꿔 검찰에 “300만원을 돌려받은 사실을 당시 캠프 상황 실장이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진술을 바꾼 것은 검찰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 더는 모르쇠로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씨는 <동아일보>에 공개한 고백의 글에서 “검찰은 이미 진실을 감추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진실이 덮어질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이미 “돈을 돌려준 직후 김 수석에게 전화가 왔다”는 고승덕 의원의 진술 등 상당한 정황과 증거를 확보한 상황에서 고씨가 위증할 논리와 의지를 잃었다는 것이다.
‘단순 실무진’에 불과했던 고씨가 김 수석 등 윗선의 시치미 떼기에 고립감과 배신감을 느낀 정황도 엿보인다. 고씨는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수석을 포함한 윗선이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 것이다. 박 의장 쪽이나 김 수석 쪽은 고씨나 조 정책수석비서관 등 ‘아군’ 쪽의 자백만 없다면 처벌이 이들 선에서 그치고 말 것이라고 기대한 것 같다.
고씨가 자신의 “거짓말이 번져나가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허위 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워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씨를 아는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고씨가 평소 착하고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약거나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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