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
김영삼정부 시절 ‘날치기’ 거부
“최근 정치 현실 걱정 많이 해”
“최근 정치 현실 걱정 많이 해”
제14대, 15대 국회에서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장이 14일 오후 4시31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호흡부전으로 눈을 감았다. 향년 83.
이 전 의장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륜중학교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화통신>을 거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다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당시 최연소(31살)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 뒤 7·10·11·12·14·15·16대까지 모두 8선의 기록을 쌓았다.
이 전 의장은 꼿꼿한 언론인의 기질과 의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1960년 4·19혁명 뒤 국회에서 자유당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동의안이 부결될 때, 이 전 의장이 당시 정치부 기자로 의사당 기자석에서 지켜보다가 “자유당 이 도눅놈들아”라고 소리친 일화는 유명하다. 이 전 의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당시 사회를 보던 곽상훈 국회 부의장이 기자석을 향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시오’라고 제지해서 국회 속기록에 이름이 올랐는데 나중에 삭제했더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제7대 의원 시절인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에 앞장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했다가 8년간 정치활동 공백기를 맞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은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이른바 ‘날치기’를 자제한 의장으로 꼽힌다. 그는 1993년 12월 국회의장 시절,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은 “나는 의사봉을 칠 때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 한 번은 방청석을 통해 국민을 바라보면서 ‘양심의 의사봉’을 친다”고 말하곤 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를 해왔다. 2주 전 이 전 의장을 만났다는 김수한 전 의장은 “만날 때마다 국회와 정치현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국민당, 민주자유당, 국민신당, 새천년민주당 등 색깔 다른 정당들을 넘나든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전 의장은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이인제 후보를 따라 전국구 의원직을 버리고 국민신당에 합류하기도 했다.
노환으로 지난봄에도 입원한 적이 있는 이 전 의장은 지난달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기간에도 자택에 누운 채 조문을 하지 못했으며, 지난 9일 병세가 악화돼 입원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1호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씨 등 1남2녀가 있다. 영결식은 오는 18일 국회에서 ‘국회장’으로 치러진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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