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훈 전 총리
강영훈 전 국무총리 별세…향년 94
노태우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강영훈 전 총리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94.
고인은 5·16 군사쿠데타에 반대한 강직한 군인이자 최초의 남북 총리회담을 성사시키며 남북관계에 이바지한 총리로 평가된다.
1921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난 그는 군인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학병에 징집돼 일본 센다이에서 육군 견습사관으로 해방을 맞은 그는 한국군 창군에 기여했다.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회의 본부장을 거쳐 육군사관학교 교장 때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 쿠데타를 맞았다. 그는 “생도는 군인이기 이전에 학생이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정치에 휩쓸려선 안된다”며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가행진을 막았다. 이 때문에 반혁명분자 1호로 구속당한 그는 군복을 벗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5·16’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산업화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옥살이에서 풀려난 그는 62년 마흔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문제연구소를 세웠다. 15년 만인 76년 귀국해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과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을 거쳐 전두환 정부 때 영국·아일랜드·로마 교황청 대사로 일했다. 13대 국회에서는 민정당 소속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 올림픽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88~90년 2년 가까이 총리 재임시절 분단 45년 만에 사상 첫 남북 총리회담을 3차례 성사시키며 남북관계의 한 획을 그었다. 2차 총리회담에서 김일성 전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그 자신 ‘남북 총리회담을 가장 자부심을 느꼈던 일’로 꼽았다.
이어 그는 91~97년 7년 동안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대북 지원사업을 했다. 그 시절 그는 인터뷰 때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돕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안 도와주면 안된다. 같은 민족끼리의 의무다”고 강조했다. 2009년까지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 총재를 맡아 일했다.
78년 외교안보연구원장이던 강 전 총리에게 발탁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한 김형오 전 의장은 10일 “마지막 순간까지 진통제 한번 맞지 않고, 가족들에게 짜증 한번 안내시고 의연하게 돌아가셨다”며 “고인은 건국과 건군, 4·19와 5·16, 5·18, 민주화 과정 등 늘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서 계셨다. 청렴·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한 애국자였다. 남에겐 봄바람처럼 따뜻했지만 본인에게는 서리처럼 엄격했던 분으로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인격체였다”라고 추모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정원식 전 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을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효수씨와 아들 성용·효영, 딸 혜연씨 등이 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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