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3일 오후 KBS에서 생방송으로 방송된 특별기획 '대선주자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과 총선을 한날에 함께 치르자고 제안하면서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선거제도와 딱 들어맞지 않는 주장이다.
반 전 총장은 23일 <연합뉴스> 인터뷰와 <한국방송> 대담에서 “대선 때만 되면 국민이 그 얼마나 열광하면서 분열하느냐. 그런데 감정의 응어리가 사그라지기도 전에 2년 후에 국회의원 선거하면서 또 분열한다”며 “국가를 통합하고 화해를 도모하려면 대선과 총선을 하루에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반 전 총장은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그렇게(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하고 있다. 한 번 싸우고 몇 년씩 가면 어떻게 하나. 한 번만 해야지 매년 이렇게 분열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반 전 총장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대선과 총선의 주기 불일치가 국가통합과 화해를 저해하고 갈등과 분열을 촉발하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 반 전 총장이 최근 10년간 거주한 미국에서는 상·하원 선거가 2년 마다 열린다. 대통령 선거가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임기 중반에 열리는 중간선거(midterm election)가 대통령 선거에 버금가는 중요한 정치적 행사다. 특히 중간선거는 행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의 역할을 수행한다.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의 중요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인지, 중도에 그만둘 것인지도 대부분 결정된다.
반 전 총장의 발언 중에서 사실인 부분은 미국에서 대선이 있는 날엔 상·하원 선거도 함께 열린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해 11월8일(현지시각)에는 대통령 뿐 아니라 상원의원 34명과 하원의원 435명 전원을 새로 뽑았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열리지 않는 2018년에도 상·하원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전체 100명의 상원의원은 임기가 6년으로 2년마다 34명, 33명, 33명씩 나눠서 선출한다. 하원의원은 전원 435명의 임기가 2년이다. 요컨대, 미국에선 4년에 한번은 반 전 총장 말대로 상·하원 선거와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지만, 그 2년 뒤마다 한번은 상·하원 선거만 열리는 것이다. (여기에다 주지사, 시장, 주의회, 교육감, 판사·검사 등의 선출까지 치면 ‘미국은 1년 내내 선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반 전 총장이 이런 미국의 이런 선거제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 하고 있던 것이거나, 알면서도 개헌론자들을 의식해 ‘대선·총선 주기 일치’를 강조하느라 의도적으로 한쪽 측면만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선거제도에 밝은 한 정치학과 교수는 2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이기 때문에 정치제도에 필수적으로 (정부와 의회 간의) 상호 견제를 위한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래서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에 치르면서도 대통령 임기 중에 중간선거를 실시해 행정부를 평가하고 견제한다. 반 전 총장이 대선과 경선을 함께 치르는 미국의 선거제도가 정쟁의 요소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미국은 365일 항시 캠페인(선거운동)이 이뤄지는 나라라는 점에서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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