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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현장] 이계진 대변인의 ‘쇼킹’한 첫 브리핑

등록 2005-11-22 14:56수정 2005-11-22 15:09

이계진 신임 대변인이 21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표로 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김경호기자jijae@hani.co.kr
이계진 신임 대변인이 21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표로 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김경호기자jijae@hani.co.kr
너무도 인간적인 논평 “이게 간극이냐, 고속도로지”
11월 초순, 국회 의원회관 533호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아직 대변인이 되기 전입니다. 그는 ‘이야기가 있는 다완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찻그릇 전시회를 여는 사람답게 이 의원은 “좋은 차”라며 가루차를 직접 챙겨 내놓았습니다. 찻잔을 앞에 두고, 그는 “정치판이 너무 야박하고 삭막하다”고 한탄했습니다. 좀 피곤해보였습니다. 정치에 대한 환멸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왜 정치판에 들어왔을까”, “반은 신선 같네…”

그의 방을 나오며 두서없이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의 대변인이 됐습니다. 여야 대결의 최일선에 선 것입니다.

그의 취임 일성은 이랬습니다. “과거 대변인의 스타일은 잠시 접고, ‘웃을 소(笑)’자의 ‘소변인’시대를 열까 한다. (정쟁을) 가능하면 않도록 하고 부딪칠 경우에도 부드러운 방법으로 여유있는 표현을 하려 노력하겠다.”

22일 아침에 있었던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 첫 인사에서도 그는 “여러분 마음과 판단 기준에 맞지 않는 코멘트를 하더라도 그게 결국 당을 위한 것이려니 하고 이해해달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첫 브리핑은 ‘쇼킹’했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해서 난자 제공 등의 윤리 문제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에 대한 입장을 말한다. 지석영 선생님이나 제너도 가족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해 본 것이다. 새로운 생명 과학은 조심스러우니 희생을 할 사람들을 찾는데, 가까운 사람을 찾는 것이다. 윤리 문제를 얘기하는데, 법에 맞고 윤리적인 것을 하면 참 좋겠지만 불치병, 난치병 환자들이 애타는 심정을 생각해서 빠른 결과를 바랐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인권이나 윤리에 관해 그만큼 항의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없어지는 난자를 이용해 연구를 하는데 윤리를 문제삼아 철수하는 것은 우리 기술에 대한 시기심에서 비롯된 흔들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여성을 납치해 강제로 한 것도 아니고 일정 부분 보상을 했다면, 그리고 누군가는 (난자를) 제공해야 한다면 현재 방법이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닌데, 선진국에서 우리의 생명공학의 연구 결과에 대해 흔들어, 부도덕성을 부각시켜 연구 결과를 선점하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있는 다완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계진 의원.
‘이야기가 있는 다완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계진 의원.

기자실 분위기가 술렁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오포 비리와 관련해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이미 구속된 한현규 경기개발원장한테서 현금 5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관해, 그는 “당에서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회의에서 거론됐다”며 “하지만 내 생각으론 진상은 조사해야겠지만, (추 장관의) 부인이 암 수술을 했다고 하는데 선거를 치른 분으로서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 부인이 그렇다면 5천만원 아니라 6천만원도 빌릴 수 있다”며 “당에는 이견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싶으며, 이 문제로 정쟁을 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한나라당의 부대변인들은 “나 몰라…”, “와…”라며 어안벙벙해 했습니다. “당론과 좀 간극이 있는 듯하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당직자는 “이게 간극이냐, 고속도로지”라고 황당해 했습니다.

이 대변인이 낸 첫 논평 제목 역시 ‘수능시험 치르는 수험생들! 파이팅’이었습니다. 논평에서 그는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좋아하는 것도 다 미루면서 열심히 공부해 왔던 만큼 반드시 기대했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수험생들이 시험장에 가는 데 불편이 없도록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습니다.

비판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 당직자는 “당의 분위기를 이 대변인이 잘 모르고 있다”며 “전여옥 전 대변인처럼 긴장된 모습도 보여줘야 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저러다 대변인 며칠 못하고 잘리는 거 아닌가”란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어찌됐건 이 대변인으로선 부드럽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날선 논평과 독설로 강렬한 이미지를 보인 전임 대변인과의 차별성을 확연히 드러낸 셈입니다.

이 의원은 예전 모든 국회 표결을 실명제로 하는 내용을 담은 ‘표결실명제 법안’을 내놓았습니다. 또 의로운 일을 하다 숨진 사람들을 위한 추모공원을 따로 만들자는, ‘몽마르트 언덕법’이라고도 불린(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다는군요) ‘의사자·의생자 추모공원 조성법안’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 대변인을 ‘허허실실’의 전형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은 실속으로 꽉 차있다는 겁니다. 좀체 실수는 없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첫째는 국민을 위해서, 둘째는 당을 위해서, 셋째는 지도부를 위해서, 넷째는 나 이계진을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말한 이 대변인.

그의 새로운 실험이 정치판에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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