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27일 오전 남북정상회담을 시청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명문화한 ’판문점 선언’이 나왔지만 국회에서 비준 동의를 얻기까지에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현재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당은 자유한국당이 유일하다.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합의 사항을 ’제도화’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6·15 공동선언’와 ‘10·4 공동선언’ 모두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앞선 지난달 국회 비준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를 중심으로 4·27 남북정상회담을 ‘남북 위장평화 쇼’로 폄하하며 국회 비준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홍 대표는 지난 27일 ’판문점 선언’이 나온 직후인 오후 6시께 페이스북을 통해 “결국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 쇼에 불과했다”며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발표문”이라고 말했다. 28일에는 “이번 남북 공동선언은 이전의 남북 선언보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고 썼고, 29일에는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 된다. 여덟 번을 속고도 아홉 번째는 참말이라고 믿고 과연 정상회담을 한 것일까요?”라고 비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29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댓글 조작 규탄 및 특검 촉구대회’에 참석해 “만찬장에서 자기들만의 잔치를 하고 아양을 부린 사람들이 무슨 양심으로 비준 얘기를 꺼내느냐”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정상국가가 아닌 국가와 이뤄진 회담의 결과를 단 한 마디 국회와 사전 논의, 또 국회 절차를 구하는 협의조차 없이 비준 운운하는 건 국회를 무시해도 이만저만 무시하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자유한국당의 목소리는 국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상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29일 논평 등을 통해 “국회 비준으로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실천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취지의 뜻을 밝혔다.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28일 “남북 정상 간 합의문이 국회 비준을 통해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비준을 위한 국회 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논평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도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합의보다 더 중요한 이행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썼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홍 대표와 한국당 멘붕 오겠습니다. 이제 전쟁 장사, 빨갱이 장사 못 하게 되어 말입니다”라며 한국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판문점 선언’ 평가를 놓고 여야 4당과 한국당의 의견이 갈라지면서, ’드루킹 사건’ 특검 도입을 놓고 형성됐던 ’한국당·바른미래당·평화당’ 구도가 허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론도 자유한국당의 반응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의 비핵화·평화 의지”에 대해 응답자의 64.7%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불신한다”는 대답은 28.3%에 머물렀다. ‘전에는 불신했으나 지금은 신뢰하게 됐다’는 응답도 절반을 넘는 52%를 기록했다. (4월27일 실시. 전국 19살 이상 성인 남녀 500명. 95% 신뢰 수준 ±4.4%p)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민들의 인식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당 안에서는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님! 수고하셨습니다. 국민과 함께 ‘해피엔딩’이 되도록 박수 치고 응원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남 지사는 30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되고 앞으로 길게 또 통일의 길까지 가기를 원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다. 똑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회 비준에 대해서는 “비준 문제는 대통령께서 너무 일찍 꺼냈다. 이것은 너무 급하면 안 된다”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지만 여야 의석수로만 놓고 보면,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은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당(121석), 민주평화당(14석), 정의당(6석), 평화당 성향인 바른미래당 비례대표(3석), 민중당(1석), 무소속인 정세균 국회의장, 호남에 지역구를 둔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 등을 모두 합하면 148석이다. 현재 국회 재적의원(293석)의 과반 기준(147석)을 넘는 수치다. 여기에 다른 바른미래당 의원들까지 참여하면 찬성 숫자는 더 많아진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국당 패싱’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 안에서는 한국당을 배제한 판문점 선언 비준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준의 목적 자체가 당파와 정권을 초월한 합의 이행이기 때문에 다수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이 참여해야 비준의 의미와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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