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으로 이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년 총선에서 ‘종로 출마설’이 굳어지는 분위기다. 종로는 ‘정치 1번지’로 불릴 정도로 단순히 지역구 한 석을 차지하는 의미를 넘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상징성도 가질 수 있다. 선거 때마다 내로라하는 정치인이 단골로 언급되는 종로의 특징부터 왜 이렇게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됐는지 ‘종로 출마의 정치학’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종로가 배출한 윤보선·노무현·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을 보면 종로의 ‘정치적 텃밭’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게 아니라 ‘노무현’을 찍었다가 ‘이명박’도 찍는 곳이 이곳 종로다. 투표성향을 보면 제1선거구로 분류되는 서부지역(평창동·부암동·청운효자동·삼청동·사직동·무악동·교남동)은 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며, 제2선거구인 동부지역은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 인구를 보더라도 지난 지방선거 기준 서부지역(6만5948명)이나 동부지역(6만9015명)이 엇비슷해 막판까지 ‘접전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건 종로에선 중도 성향인 혜화동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한다. 선관위 자료를 보면, 18~20대 총선에서 혜화동에서 표를 더 많이 얻은 사람이 당선자가 됐다.
두 번째로 걸출한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이름있는 정치인이 종로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종로에서 당선되고 난 뒤 ‘대권주자’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더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보 노무현’의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종로에서 재보궐 선거에 당선된 지 6개월 만에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험지인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겨갔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15대 총선은 ‘현대건설 신화’를 내세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청문회 스타’인 노 전 대통령이 빅매치를 벌였지만, 이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에서 자진사퇴하며 재보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의원은 “부산에 4번 떨어지고, 5번째 당선된 사람에게 대권주자라고 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이 종로에서 당선됐지만, 그걸 버리고 부산으로 가 낙선했기 때문에 감동적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 보면 종로에 대해 “종로에는 내로라하는 사람이 많았다. 평창동, 창신동, 동대문시장 등 사회적 공간도 매우 다양하고 입체적이었다. 종로구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국가를 운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현재 종로를 지역구로 하는 정세균 의원 역시 19대 총선과 20대 총선에서 ‘친박 좌장’인 홍사덕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잇달아 꺾은 뒤 정치적 위상이 달라졌다.
이런 지역적 특성 탓에 정치적 야망이 있는 사람은 종로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종로 출마는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는 ‘절대 찬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현재 종로 출마가 거론되는 임 전 실장을 포함해 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모두 목표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닌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데 있다. 5선의 정세균 의원도 종로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선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대권에 뜻이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임 전 실장은 지난 10일 평창동 단독주택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이낙연 총리도 지난달 총선에서의 역할과 관련해서 “저도 정부·여당에 속한 일원으로 거기서 뭔가 일을 시키면 합당한 일을 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자유한국당 쪽에서는 여의도연구원을 이끄는 김세연 의원이 “(황 대표는) 종로 출마가 가장 정공법”이라고 불을 지피고 있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종로 출마 후보로 거론되는 이 4명의 후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2%씩 정치적으로 부족한 느낌을 주는 데 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종로에 도전해서 나도 노무현, 이명박처럼 검증받고 싶다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 만큼 당선자는 화려한 후광을 누리지만, 낙선했을 때 타격도 상당하다.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에 탈당해 통합민주당 당 대표가 된 손학규 대표는 “수도권 대오의 최전봉에 서서 싸우겠다”며 종로에 출사표를 냈지만, 당시 박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패하고, 강원도 춘천으로 내려가 한동안 칩거하기도 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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