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대전·세종·충북·충남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내년 4월 재보궐선거 때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기상조론’을 들며 부정적인 뜻을 밝힌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상황 관리’를 해야 할 현직 대표로서, 유력 대선주자가 당 안팎 현안을 놓고 전방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견제 심리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전략회의에서 “이 지사가 저렇게 말해버리면 일주일 내내 시끄러울 것이다. 지금 저렇게 모두 답변할 필요가 뭐가 있냐” “이 지사가 (서울·부산시장 공천에 대해) 답변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회의 당일 아침 이 지사는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 우리가 중대한 비리 혐의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공천하지 않겠다고 써놓지 않았느냐”며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민주당 당헌(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대표가 이 지사의 발언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한 배경은 대략 세 가지 정도다. 일단은, 재보궐선거까지는 8개월 남짓 시간이 남았는데 이 지사의 발언으로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성추행 의혹이 집중 조명되는 데 대한 부담이다. 이 대표는 당시 회의에서 “시장 경선은 내년 2월 정도에 해야 하고, 그러려면 연말쯤 후보를 낼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 지금 얘기하면 계속 얻어맞기만 한다”며 “후보를 낼지 말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8·29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이 지사의 존재감 부각으로 당내 세력구도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 이 대표의 경계심도 깔려 있다. 이 지사는 닷새 전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 유지가 확정되자마자, 부동산부터 공천 문제까지 작심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 지금부터 공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버리면 8월 들어설 새 지도부가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점도 있다. 당권주자들은 이날 ‘서울시장·부산시장 무공천’ 주장에 대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당내에서 왈가왈부하는 게 현명한가”(이낙연),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김부겸)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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