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에릭슨, 한국에 15억달러 투자” 발표
에릭슨 “구체적 투자 규모 약속 안했다” 부인
에릭슨 “구체적 투자 규모 약속 안했다” 부인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중에 발표한 스웨덴 에릭슨사의 한국 투자계획을 에릭슨이 외국언론을 통해 부인하는 일이 벌어졌다.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 업적을 내세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확정되지도 않은 외국 업체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셈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4일 ‘에릭슨, 성급한 서울 보도에 경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에릭슨이 앞으로 5년간 한국에 1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청와대 발표와 관련해 “에릭슨 회장이 지난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남에서 그러한 투자계획을 약속한 바 없다”며 “에릭슨 쪽이 한국 정부의 발표에 당혹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릭슨코리아의 비에른 알덴 사장은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4세대 무선통신 기술에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은 맞지만 구체적 투자규모를 밝히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에릭슨의 한국 투자 규모는 4세대 이통 서비스권 할당과 시장접근성 등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에릭슨 본사 관계자는 “미래에 한국에 대한 투자가 15억달러에 이를 수도 있지만 현 단계에서 그런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매우 허황된(highly speculative) 것”이라며 당혹스러워했다.
앞서 지난 12일 청와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스 베스트베리 에릭슨 회장이 스웨덴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과 스톡홀름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녹색 기술과 4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 한국에 연구개발센터와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에릭슨 한국지사의 인력을 80명에서 1000명으로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다”며 “에릭슨에 따르면 향후 5년간 한국에 15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에릭슨코리아가 이 대통령과 베스트베리 회장의 면담과 관련해 13일 발표한 보도자료는 “광대역 이동통신 등 4세대 통신기술 기반의 녹색 생태계 분야에서 상호협력하기로 했다”는 언급만 있을 뿐, 한국에 투자나 고용 규모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전혀 없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14일 해명자료를 내어 “베스트베리 회장이 11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만났을 때 배석한 실무자가 ‘에릭슨이 한국에서 1000명 규모로 고용을 확대할 계획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금액인지’ 물었을 때 베스트베리 회장이 ‘시장 상황에 따라 15억달러도 20억달러도 될 수 있다’는 답변을 했다”며 “청와대 발표는 이에 기초하여 에릭슨의 대략적인 투자 예상 규모를 적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12일 이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에릭슨 회장의) 구체적인 투자 금액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에릭슨 쪽은 이런 사전 협의조차 부인했다. 스웨덴에 체류중인 에릭슨코리아 관계자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에릭슨은 한국에서 고용 1000명, 15억달러 투자와 같은 구체적 확약을 한 바 없다”며 “그러나 한국정부가 어떤 식으로 발표할지 대략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구체적 계획을 논의할 시간 자체가 없었다”며 “15억달러 등 숫자는 우리가 제시한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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