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TV와 라디오로 생방송된 제42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을 말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열흘만의 ‘민심 해법’, “바른 길 가고 있다”며 원칙만
“정책이 정치적 사안 돼 국론 분열” 민심에 ‘역주행’
“정책이 정치적 사안 돼 국론 분열” 민심에 ‘역주행’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저를 포함해서 청와대와 정부 모두가 자기 성찰의 바탕 위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변화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6·2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열흘 남짓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첫 언급이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내각의 시스템과 인적 개편 등 몇가지 방향도 제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조차 “쇄신의 흐름을 일정하게 반영했지만, 민심의 요구에 비해 불완전하다”(한 소장파 의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 대통령의 연설은 ‘6·2 민심’과는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쇄신과 개혁의 원칙적 자세만 밝혔을 뿐 구체적 방안은 “방침이 정해지는 대로 밝힐 기회를 갖겠다”며 뒤로 미뤘다.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체성, 비전에 입각한 국정기조는 확고하게 유지해나갈 것이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바른길로 가고 있다”며 큰 틀에서 국정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임도 분명히 했다.
당장의 정책 현안에 대해서도 기존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 한나라당 패배의 원인으로 꼽는 핵심 현안인 4대강 사업에 대해 이 대통령은 “더 많은 의견, 지방자치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면서도 강행 의지를 밝혔다. 오히려 이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 고속철도 등이 반대에 부딪혔던 점을 거론하며 “바로 그 사업들이 대한민국 발전의 견인차가 됐다. 4대강 사업도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며 변치 않는 ‘4대강 소신’을 보여줬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 문제는 “국회가 이번 회기(6월 임시국회)에 표결 처리해주기 바란다”며 국회를 통한 사실상의 포기 수순을 택했다. 하지만 야당은 “이 대통령 스스로 수정안을 철회하는 게 6·2 민심을 반영한 해법”이라며 반발했다. 그나마 국회에 공을 넘기면서도, 1년 가까이 끌어온 국론 분열과 정치적 혼란,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충청 민심에 대해서는 책임있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오히려 세종시와 4대강을 “정책적 사안이 정치적 사안이 되어 국론 분열이 극심해지는 경우”라고 치부했다. ‘나는 역사적 소신, 비판자는 정략적 의도’라는 기존 인식을 그대로 내보인 것이다.
게다가 국민에 대한 메시지 전달 방식도 기자회견 등 쌍방향이 아니라, 정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텔레비전으로 확장한 일방적인 소통이었다. 한나라당 초·재선 의원들이 여권 인적 쇄신을 요구해온 데 대해 “모두가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내 탓’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훈계’한 것도 자성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쇄신 방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