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차관 기용 의미는
정통 경제 전문가 아닌데 자원외교 맡겨
정두언·정태근 “정치에 거리 둔다지만 걱정”
정통 경제 전문가 아닌데 자원외교 맡겨
정두언·정태근 “정치에 거리 둔다지만 걱정”
이명박 대통령의 13일 차관급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지식경제부 제2차관에 기용한 것이다. 인사 독식 등 ‘권력 전횡’ 논란 뿐 아니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라는 의혹까지 받아온 박 차장은 일단 총리실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최소한 ‘조용한 자리로 옮길 것’이라는 여권 일각의 예상과 달리 주요 경제부처 차관으로 거듭 중용됐다. 박 차장이 그동안 정치적 논란의 당사자였다는 점과, 정통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박 차장의 지경부 차관 기용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번 차관 인사는 한분 한분보다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봤다”며 “그 이상 제가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을 흐렸다. 그만큼 박 차장의 거취를 청와대도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셈이다. 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박 차장을 논란이 됐던 국무차장 자리에서 빼내 순수한 경제 분야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논란의 여지를 없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과 주요 회의 등 국정 전반을 다루는 국무차장 자리를 벗어나, 에너지·자원과 무역을 담당하는 지경부 제2차관 자리로 보낸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박 내정자 본인도 이날 “에너지 자원 분야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부 지역, 중남미 쪽을 상대로 자원외교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인사는 지난 8·8 개각에서 드러난 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친정체제’ 강화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박 차장은 지난 2007년 대선 때 선진국민연대 등 외곽 지지그룹 결성을 주도하고, 이 대통령 당선 이후엔 청와대와 첫 내각 인선 작업을 주도했다. 또 초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지낸 정권의 실세다. 2008년 6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권력 사유화’ 논쟁 속에 청와대를 떠났다가 이듬해 1월 국무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데 이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지경부 차관에 기용됨으로써,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도 확인됐다.
그만큼 이 대통령은 ‘그들만의 소통’, ‘회전문 인사’라는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측근들을 내각에 전면 배치해 ‘내 갈 길을 가겠다’고 확실히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박 내정자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강하게 비판해온 정두언 의원은 “걱정스럽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정태근 의원은 “정무적 활동이 불가능한 곳으로 배치한 고심은 읽을 수 있으나, 여러모로 걱정되는 바가 많다”며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를 요구했고, 몸통을 밝혀내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준범 신승근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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