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달된 전산화 덕 2~3일이면 거의 체크…검증 어려운 직종 언론인·교수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검증의 딜레마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3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갑자기 사퇴했다. 이 부총리 부인이 1980년 무렵 경기도 광주의 농지와 임야를 매입하기 위해 위장전입했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였다. 오랜 관료 생활을 했고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적이 있는 이 부총리에게 위장전입이란 흠집이 있으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그러나 청와대는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1년여 전인 2004년 2월 이헌재씨를 경제부총리로 임명할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 부총리 부인이 1980년 무렵 경기도 광주의 농지와 임야를 위장전입을 통해 매입한 사실을 곧바로 파악했다.
민정수석실은 이 내용을 인사수석실은 물론이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 그러나 이헌재씨를 경제부총리 후보로 추천한 인사수석실 쪽은 “이미 20년이 지난 사안이고 현재까지 땅을 보유하고 있으니 투기라고 보기 어렵다. 정상 참작이 된다. 또 그 사람이 지금 경제정책 사령탑으론 최선이다“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도 이런 논리에 마음이 기울었고, 결국 인사수석실의 손을 들어줬다.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전 검증과정에서 공직 후보자의 중요한 결격사유를 빠뜨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대통령의 생각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그 사람을 꼭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렇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 다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이 논란이다. 7·28 개각에서 기용된 장관 후보자들의 다수가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고, 일부는 부동산 투기 의혹마저 일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초기인 2008년 2월 첫 인사 때 ‘고소영’(고대 소망교회 영남)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논란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시스템의 문제인가, 인식의 문제인가.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예상보다 훨씬 ‘촘촘’ 장관 후보자의 흠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지만, 사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촘촘하고 세밀하다. 언론에 보도되는 고위 공직후보자의 문제점을 청와대가 모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개각에서 청와대가 몰랐던 사안은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문제발언이 담겼던 동영상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언론보다 나중에 알았던 사안은 딱 하나, 2005년 낙마한 이기준 교육부총리 아들의 증여세 탈루 의혹 뿐이었다. 이기준 부총리의 인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인사는 “이 부총리의 부동산 내역은 우리도 다 파악하고 있었다. 경기 수원에 10억여원대의 땅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땅 위에 어떤 건물(이 건물이 아들 소유였다)이 있고 그 건물 소유와 임대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서 허점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건 직접 현장에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뒤 청와대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매뉴얼’엔 공식적으로 한가지 사항이 추가됐다. “의심이 가는 임야나 토지는 해당 지역의 경찰서 정보과 형사를 보내 건물 유무와 문제점 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장관들이 대개 대통령과 4년 임기를 같이 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보통 1년 정도면 장관을 바꾼다. 예상치 못한 정책 실패나 개인 비리가 터지면 갑작스레 장관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런 경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며칠 안에 장관 후보자를 스크린해야 한다.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그런 데 익숙해져 있다. 정부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 2~3일이면 중요한 사안들은 거의 체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고속 검증이 가능한 비결은 전산화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발전한 우리 정부의 전산화는, 불과 몇시간이면 장관 후보자의 부동산, 위장전입, 병역, 전과 등등 온갖 자료를 체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규모와 질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우선, 위장전입 여부는 행정자치부에서 받는 주민등록 서류만으로 금세 파악된다. 주민등록은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 1970년대 이후의 개인주소 이전사항을 싹 파악할 수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얘기. “공직 후보자인 남편과 아내의 주민등록지는 대개 같다. 그런데 일정 기간 동안 아내의 주민등록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경우가 나오면 위장전입을 의심한다. 특히 아이들까지 아내의 주민등록지로 주소지가 옮겨졌다면 십중 팔구는 학군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의 주소지를 위장 전입한 케이스다.” 이번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이현동 국세청장·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은 안되지만,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과거에도 그냥 넘어간 관례가 있다”는 판단이 세 사람의 지명을 가능케 했다.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문제였던 셈이다. “부동산 투기·탈세 반나절이면 파악 끝” 부동산 투기(또는 투자)와 탈세 여부도 반나절이면 파악이 가능하다. 국세청에서 과세 자료와 부동산거래내역 자료를 받기 때문이다. 이들 자료엔 1970년대 이후 공직후보자 개인과 직계 가족의 부동산거래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목록만 보더라도 대략적인 부동산 투기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의 얘기. “지방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우선 그 위치가 고향 근처인지를 본다. 고향 근처라면 선산이거나 퇴임 뒤 낙향에 대비해 땅을 샀을 수 있다. 그 다음엔 부동산 보유지역에서 과거에 근무한 적이 있는지를 본다. 과거 근무지와 겹치면 그때 부동산을 샀을 수 있다. 이 두가지 사안에 해당되면 어느 정도 해명이 된다. 둘다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의 100% 투기로 봐야 한다.” 그러나 지방에 보유한 땅은, 거래내역에 적힌 내용만으론 문제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를 알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어느 장관 후보자가 강원도 홍천에 땅 100평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게 어떤 땅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장에게 물어보거나 때론 민정수석실에서 직접 현지 실사를 나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고위공직자 낙마의 가장 대표적 케이스인 ‘위장전입에 따른 부동산 구입’ 여부를 사전에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 검증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언론들이 전담팀까지 구성해 며칠간 추적취재를 해야 파악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위장전입 문제를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그것도 단 몇시간 만에 파악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전·이중국적 관련된 병역 문제는 파악 어려워 병역과 전과는 어떤 검증과정을 거칠까. 병역과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병무청으로부터 병적자료를 제출받는다. 공직 후보자와 아들의 병적자료, 공직 후보자가 여성일 때는 배우자의 병적자료까지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병역 자체만으로 검증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병무청의 병적기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1980년 이전 기록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 이전의 병역사항은 ‘000으로 의병 제대’라는 식으로 딱 한줄만 병적자료에 기재돼 있다. 그러니 공직 후보자가 “병에 걸려 제대했지만, 지금은 다 나았다”고 말해도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정부의 인사검증 파트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어느 고위 공직자는 ‘아이 오줌을 먹고 병이 깨끗이 나아서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 병역 문제는 이중국적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국적은 신고제이므로 스스로 고백하기 이전엔 공직 후보자 자녀의 이중국적 여부를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아들이 군 복무를 해야할 나이가 되면 외국 국적을 버리고 입대를 하든지 아니면 한국국적을 포기하든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때 비로소 이중국적 여부가 드러난다. “이중국적을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공직 후보자가 어느 나라에 체류했는지를 본다. 만약 미국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는 거의 100% 이중국적자라고 보면 맞다. 성장한 아들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우리 군에 입대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국적을 택한다. 이런 경우 고위 공직자들은 대개 ‘아들이 스스로 원해서 미국국적을 택했는데 난들 어떻게 하겠느냐’고 해명한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대학·대학원을 마친 뒤 한국기업에 취직하는 식으로 국내로 들어와 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병역만 면제받고는 사실상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후보자는 ‘아들이 장기간 외국생활을 했기에 미국국적을 택했다’고 해명했는데, 출입국 현황을 살펴보니 미국서 살지 않고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면서 살았다. 병역 기피를 위해 수시로 가까운 일본을 들락달락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검증에서 탈락했다.”(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 고위 공직후보자 가운데엔 과거의 전과 경력 때문에 탈락하는 사례도 의외로 많다. 경찰 전과기록은 전산화가 잘되어 있어, 1960년대 어렸을 적에 동네 가게에서 물건 하나 훔쳤다가 소년원에 갔다온 기록까지 다 나온다. 물론, 전과 경력 중엔 음주운전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다. 노무현 정부는 음주운전 문제에서 ‘한번은 눈감아주고, 두번 음주운전을 한 사람은 인사상 불이익을 한차례 준다’고 나름의 기준을 세웠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기준은 거의 사문화됐다. 건축·산림법 위반은 비리 연루 가능성 높아 청와대 민정팀이 일반 전과사항 가운데 눈여겨 보는 부분은 건축법 위반이나 산림법 위반 등이다. 이런 사안은 뇌물 등 도덕성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윤락행위방지법은 어떨까. “과거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성매매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윤락행위방지법은 다른 범죄와 병합이 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는 게 검증작업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얘기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반적 기준보다 훨씬 과다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면, 윤리적으로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중한 사안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고위 공무원의 승진인사 검증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후보자 A씨가 과거에 지방근무를 할 때 지역 기관장들과 어울려 룸살롱을 몇차례 갔고, 그 룸살롱에서 가장 예쁜 여종업원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운 나쁘게도 경찰의 일제 단속 때 그 룸살롱이 걸려들었다. 마침 룸살롱 쪽은 여종업원들이 외박나갈 때마다 돈을 받고 영수증을 꼬박꼬박 발급해준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 내역을 조사해보니, 여종업원은 A씨 뿐 아니라 지역의 다른 기관장들과도 모두 외박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그 여종업원은 미성년자였다. A씨는 “여종업원이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고, 성숙한 여종업원의 외모로 보면 실제로 몰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미성년자와의 성매매는 일반적 외도와는 또다른 무거운 사안이라, 그는 결국 승진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권에 관계없이 청와대 인사검증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검증이 가장 쉬운 직종은 공무원이다. 행정자치부에 재산등록 서류를 비롯해 자료가 많이 축척되어 있는 데다, 국장급 이상으로 장·차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한다. 2~3일이면 검증을 마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직종 중 하나가 언론인이다. 언론인에 대한 자료는 논란에 휘말릴까봐 어느 기관이든지 제대로 축적을 해놓지 않아 검증에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문제가 많이 드러나는 직종 중 하나는 교수다. 교수들은 학교에 요청하면 검증자료를 챙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외국에서 공부를 해, 아이들의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또 부동산과 병역 등에서도 문제가 드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여기에 최근 들어선 논문 표절이 새로운 검증 가이드라인이 되는 바람에, 교수를 고위직에 등용하는 건 훨씬 위험부담이 커졌다.” 갑작스런 장관 교체 후임에 관료출신 많은 건 ‘검증의 용이성’ 때문 갑작스레 장관을 교체할 때 또는 장관 후보자가 뜻하지 않은 결격사유로 낙마했을 때, 대개 관료 출신으로 후임을 가져가는 건 상대적으로 단시일 내에 검증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에 교수와 언론인의 기용은 인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검증 측면에선 위험 부담이 크다. 이번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논란 대상에 오른 데엔 그가 언론인 출신이란 점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핵심적인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어느 의원은 “보통 중앙 정부부처 국장쯤 돼서 장차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기 마련인데, 엘리트 경제관료로 꼽혔던 이재훈 후보자가 어떻게 쪽방촌 건물을 사들일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부인의 부동산 매입을 남편이 몰랐을 수도 있지만, 장차관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은 부인의 행동까지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청와대의 사전 검증이 완벽한 건 아니다. 검증에서 밝혀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금융 관련 사안들은 공직후보자 본인이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한, 사전 검증에서 스크린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병역, 전과 등의 자료는 해당 정부기관으로부터 협조를 받을 수 있지만, 금융 재산은 본인 동의 없이는 은행으로부터 받아보는 게 매우 어렵다. 어떤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그 주식을 소유한 게 도덕성 측면이나 이해충돌 측면에서 문제는 없는지 등을 알려면, 우선 본인의 ‘자백’에 의존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 기관장에 임명된 인사가 황급히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 인사는 국내 굴지의 재벌회사 사외이사로 재직중이었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내가 사외이사를 하면서 스톡옵션을 받은 게 있다. 그걸 지금 언론이 취재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민정수석실은 “빨리 사외이사를 그만두고, 받은 주식은 돌려주라”고 말했다. 이 기관장은 청와대 조언을 그대로 따랐고, 아무런 문제 없이 기관장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리·불법 저지른 자 고위 공무원 될 생각 애초에 버려야 때론 본인도 모르게 검증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보통 3배수인 공식 후보 리스트에 오르기 전에, 청와대에서 미리 그 분야의 유력한 인사들을 약식으로 스크린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견되면, 공식 후보군에 포함되지도 않고 언론엔 이름 한번 비치지 않은 가운데 탈락한다. 본인은 1차 후보군에 올랐던 사실도, 탈락한 사실도 전혀 모르는 것이다. 후보군에 오르면 그때엔 본인에게 통보되고 부동산, 전과, 병역, 납세, 여자관계를 비롯한 각종 소문, 회사 또는 대학내 평가 등등을 샅샅히 훑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관된 인사파일에 고스란히 담긴다. 아무리 비공개라고 하지만 후보자의 프라이버시가 통째로 권력의 손 안에 있는 셈이다. 이게 싫으면, 고위 공직에 진출할 생각을 아예 접으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로 부를 늘리는 게 뭐가 문제인가, 물론 불법만 저지르지 않았다면 문제될 게 없다. 다만, 고위 공직에 오를 생각을 버리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지, 과거의 허물이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이나 위장전입 문제에서 지금의 청와대가 비교적 관대한 건, 이 대통령 자신이 그런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공직 인선을 하는데, 그 기준이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것이다. 공직 인선의 가이드라인이 올라가면, 어느 나라 어느 정권이든 좋은 인재를 고르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걸 회피해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예상보다 훨씬 ‘촘촘’ 장관 후보자의 흠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지만, 사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촘촘하고 세밀하다. 언론에 보도되는 고위 공직후보자의 문제점을 청와대가 모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개각에서 청와대가 몰랐던 사안은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문제발언이 담겼던 동영상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언론보다 나중에 알았던 사안은 딱 하나, 2005년 낙마한 이기준 교육부총리 아들의 증여세 탈루 의혹 뿐이었다. 이기준 부총리의 인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인사는 “이 부총리의 부동산 내역은 우리도 다 파악하고 있었다. 경기 수원에 10억여원대의 땅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땅 위에 어떤 건물(이 건물이 아들 소유였다)이 있고 그 건물 소유와 임대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서 허점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건 직접 현장에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뒤 청와대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매뉴얼’엔 공식적으로 한가지 사항이 추가됐다. “의심이 가는 임야나 토지는 해당 지역의 경찰서 정보과 형사를 보내 건물 유무와 문제점 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장관들이 대개 대통령과 4년 임기를 같이 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보통 1년 정도면 장관을 바꾼다. 예상치 못한 정책 실패나 개인 비리가 터지면 갑작스레 장관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런 경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며칠 안에 장관 후보자를 스크린해야 한다.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그런 데 익숙해져 있다. 정부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 2~3일이면 중요한 사안들은 거의 체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고속 검증이 가능한 비결은 전산화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발전한 우리 정부의 전산화는, 불과 몇시간이면 장관 후보자의 부동산, 위장전입, 병역, 전과 등등 온갖 자료를 체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규모와 질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우선, 위장전입 여부는 행정자치부에서 받는 주민등록 서류만으로 금세 파악된다. 주민등록은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 1970년대 이후의 개인주소 이전사항을 싹 파악할 수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얘기. “공직 후보자인 남편과 아내의 주민등록지는 대개 같다. 그런데 일정 기간 동안 아내의 주민등록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경우가 나오면 위장전입을 의심한다. 특히 아이들까지 아내의 주민등록지로 주소지가 옮겨졌다면 십중 팔구는 학군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의 주소지를 위장 전입한 케이스다.” 이번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이현동 국세청장·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은 안되지만,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과거에도 그냥 넘어간 관례가 있다”는 판단이 세 사람의 지명을 가능케 했다.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문제였던 셈이다. “부동산 투기·탈세 반나절이면 파악 끝” 부동산 투기(또는 투자)와 탈세 여부도 반나절이면 파악이 가능하다. 국세청에서 과세 자료와 부동산거래내역 자료를 받기 때문이다. 이들 자료엔 1970년대 이후 공직후보자 개인과 직계 가족의 부동산거래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목록만 보더라도 대략적인 부동산 투기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의 얘기. “지방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우선 그 위치가 고향 근처인지를 본다. 고향 근처라면 선산이거나 퇴임 뒤 낙향에 대비해 땅을 샀을 수 있다. 그 다음엔 부동산 보유지역에서 과거에 근무한 적이 있는지를 본다. 과거 근무지와 겹치면 그때 부동산을 샀을 수 있다. 이 두가지 사안에 해당되면 어느 정도 해명이 된다. 둘다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의 100% 투기로 봐야 한다.” 그러나 지방에 보유한 땅은, 거래내역에 적힌 내용만으론 문제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를 알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어느 장관 후보자가 강원도 홍천에 땅 100평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게 어떤 땅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장에게 물어보거나 때론 민정수석실에서 직접 현지 실사를 나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고위공직자 낙마의 가장 대표적 케이스인 ‘위장전입에 따른 부동산 구입’ 여부를 사전에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 검증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언론들이 전담팀까지 구성해 며칠간 추적취재를 해야 파악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위장전입 문제를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그것도 단 몇시간 만에 파악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전·이중국적 관련된 병역 문제는 파악 어려워 병역과 전과는 어떤 검증과정을 거칠까. 병역과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병무청으로부터 병적자료를 제출받는다. 공직 후보자와 아들의 병적자료, 공직 후보자가 여성일 때는 배우자의 병적자료까지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병역 자체만으로 검증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병무청의 병적기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1980년 이전 기록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 이전의 병역사항은 ‘000으로 의병 제대’라는 식으로 딱 한줄만 병적자료에 기재돼 있다. 그러니 공직 후보자가 “병에 걸려 제대했지만, 지금은 다 나았다”고 말해도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정부의 인사검증 파트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어느 고위 공직자는 ‘아이 오줌을 먹고 병이 깨끗이 나아서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 병역 문제는 이중국적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국적은 신고제이므로 스스로 고백하기 이전엔 공직 후보자 자녀의 이중국적 여부를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아들이 군 복무를 해야할 나이가 되면 외국 국적을 버리고 입대를 하든지 아니면 한국국적을 포기하든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때 비로소 이중국적 여부가 드러난다. “이중국적을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공직 후보자가 어느 나라에 체류했는지를 본다. 만약 미국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는 거의 100% 이중국적자라고 보면 맞다. 성장한 아들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우리 군에 입대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국적을 택한다. 이런 경우 고위 공직자들은 대개 ‘아들이 스스로 원해서 미국국적을 택했는데 난들 어떻게 하겠느냐’고 해명한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대학·대학원을 마친 뒤 한국기업에 취직하는 식으로 국내로 들어와 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병역만 면제받고는 사실상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후보자는 ‘아들이 장기간 외국생활을 했기에 미국국적을 택했다’고 해명했는데, 출입국 현황을 살펴보니 미국서 살지 않고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면서 살았다. 병역 기피를 위해 수시로 가까운 일본을 들락달락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검증에서 탈락했다.”(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 고위 공직후보자 가운데엔 과거의 전과 경력 때문에 탈락하는 사례도 의외로 많다. 경찰 전과기록은 전산화가 잘되어 있어, 1960년대 어렸을 적에 동네 가게에서 물건 하나 훔쳤다가 소년원에 갔다온 기록까지 다 나온다. 물론, 전과 경력 중엔 음주운전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다. 노무현 정부는 음주운전 문제에서 ‘한번은 눈감아주고, 두번 음주운전을 한 사람은 인사상 불이익을 한차례 준다’고 나름의 기준을 세웠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기준은 거의 사문화됐다. 건축·산림법 위반은 비리 연루 가능성 높아 청와대 민정팀이 일반 전과사항 가운데 눈여겨 보는 부분은 건축법 위반이나 산림법 위반 등이다. 이런 사안은 뇌물 등 도덕성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윤락행위방지법은 어떨까. “과거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성매매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윤락행위방지법은 다른 범죄와 병합이 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는 게 검증작업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얘기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반적 기준보다 훨씬 과다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면, 윤리적으로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중한 사안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고위 공무원의 승진인사 검증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후보자 A씨가 과거에 지방근무를 할 때 지역 기관장들과 어울려 룸살롱을 몇차례 갔고, 그 룸살롱에서 가장 예쁜 여종업원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운 나쁘게도 경찰의 일제 단속 때 그 룸살롱이 걸려들었다. 마침 룸살롱 쪽은 여종업원들이 외박나갈 때마다 돈을 받고 영수증을 꼬박꼬박 발급해준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 내역을 조사해보니, 여종업원은 A씨 뿐 아니라 지역의 다른 기관장들과도 모두 외박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그 여종업원은 미성년자였다. A씨는 “여종업원이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고, 성숙한 여종업원의 외모로 보면 실제로 몰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미성년자와의 성매매는 일반적 외도와는 또다른 무거운 사안이라, 그는 결국 승진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권에 관계없이 청와대 인사검증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검증이 가장 쉬운 직종은 공무원이다. 행정자치부에 재산등록 서류를 비롯해 자료가 많이 축척되어 있는 데다, 국장급 이상으로 장·차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한다. 2~3일이면 검증을 마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직종 중 하나가 언론인이다. 언론인에 대한 자료는 논란에 휘말릴까봐 어느 기관이든지 제대로 축적을 해놓지 않아 검증에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문제가 많이 드러나는 직종 중 하나는 교수다. 교수들은 학교에 요청하면 검증자료를 챙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외국에서 공부를 해, 아이들의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또 부동산과 병역 등에서도 문제가 드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여기에 최근 들어선 논문 표절이 새로운 검증 가이드라인이 되는 바람에, 교수를 고위직에 등용하는 건 훨씬 위험부담이 커졌다.” 갑작스런 장관 교체 후임에 관료출신 많은 건 ‘검증의 용이성’ 때문 갑작스레 장관을 교체할 때 또는 장관 후보자가 뜻하지 않은 결격사유로 낙마했을 때, 대개 관료 출신으로 후임을 가져가는 건 상대적으로 단시일 내에 검증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에 교수와 언론인의 기용은 인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검증 측면에선 위험 부담이 크다. 이번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논란 대상에 오른 데엔 그가 언론인 출신이란 점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핵심적인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어느 의원은 “보통 중앙 정부부처 국장쯤 돼서 장차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기 마련인데, 엘리트 경제관료로 꼽혔던 이재훈 후보자가 어떻게 쪽방촌 건물을 사들일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부인의 부동산 매입을 남편이 몰랐을 수도 있지만, 장차관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은 부인의 행동까지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청와대의 사전 검증이 완벽한 건 아니다. 검증에서 밝혀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금융 관련 사안들은 공직후보자 본인이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한, 사전 검증에서 스크린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병역, 전과 등의 자료는 해당 정부기관으로부터 협조를 받을 수 있지만, 금융 재산은 본인 동의 없이는 은행으로부터 받아보는 게 매우 어렵다. 어떤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그 주식을 소유한 게 도덕성 측면이나 이해충돌 측면에서 문제는 없는지 등을 알려면, 우선 본인의 ‘자백’에 의존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 기관장에 임명된 인사가 황급히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 인사는 국내 굴지의 재벌회사 사외이사로 재직중이었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내가 사외이사를 하면서 스톡옵션을 받은 게 있다. 그걸 지금 언론이 취재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민정수석실은 “빨리 사외이사를 그만두고, 받은 주식은 돌려주라”고 말했다. 이 기관장은 청와대 조언을 그대로 따랐고, 아무런 문제 없이 기관장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리·불법 저지른 자 고위 공무원 될 생각 애초에 버려야 때론 본인도 모르게 검증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보통 3배수인 공식 후보 리스트에 오르기 전에, 청와대에서 미리 그 분야의 유력한 인사들을 약식으로 스크린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견되면, 공식 후보군에 포함되지도 않고 언론엔 이름 한번 비치지 않은 가운데 탈락한다. 본인은 1차 후보군에 올랐던 사실도, 탈락한 사실도 전혀 모르는 것이다. 후보군에 오르면 그때엔 본인에게 통보되고 부동산, 전과, 병역, 납세, 여자관계를 비롯한 각종 소문, 회사 또는 대학내 평가 등등을 샅샅히 훑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관된 인사파일에 고스란히 담긴다. 아무리 비공개라고 하지만 후보자의 프라이버시가 통째로 권력의 손 안에 있는 셈이다. 이게 싫으면, 고위 공직에 진출할 생각을 아예 접으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로 부를 늘리는 게 뭐가 문제인가, 물론 불법만 저지르지 않았다면 문제될 게 없다. 다만, 고위 공직에 오를 생각을 버리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지, 과거의 허물이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이나 위장전입 문제에서 지금의 청와대가 비교적 관대한 건, 이 대통령 자신이 그런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공직 인선을 하는데, 그 기준이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것이다. 공직 인선의 가이드라인이 올라가면, 어느 나라 어느 정권이든 좋은 인재를 고르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걸 회피해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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